[반짝임 줍는 교실살이-5] 밤편지 (1)
사랑하는 너희에게, 직접 전하진 못할 오글오글한 사랑 편지를 쓴다.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가 가까워 오고 있어. 너희는 아직 그 느낌을 모르겠지만.
작년에 같은 학년의 너희보다 한 해 선배인 아이들을 맡았을 때, 그 아이들과 내가 헤어질 때 너무 슬퍼할까봐 겁이 나더라.
자꾸 3학년 되기 싫다며 애착을 보이는 아이들이, 정말 올라가서 잘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되었어. 그래서 마지막까지 일부러 헤어지는 느낌이 안 들게 하려고 애쓴 기억이 나. (물론 풀어지고 안전사고가 날까봐 더 조심한 것도 있지만. ^^)
종업식 며칠 전까지도 평소랑 별다를 바 없이 수업하고 생활했지. 3학년 되면 계속 지나다니면서 보는 거다, 별 거 아니라며 그 아이들을 웃으며 보냈는데, 마음이 텅 빈 느낌이 참 오래 가더라. 차라리 같이 한껏 아쉬워했으면 나았을까? 그 아이들도 자연스러운 마음으로 어떻게 느끼든 있는 그대로 둘 걸, 괜히 겁낸 것이 어리석었다는 생각도 들어.
(머리 길었던 시절)
" 빈 교실이, 참 적막하다."
올해를 마무리하면, 다른 학교로 옮겨가게 되어서, 더 기분이 이상해.
마음에 텅 비는 자리가 너무 크면 어쩌지? 너희가 참 보고 싶을 거야.
그런데 요즘,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내 말투는 점점 단호해지고, 성격이 급해지고, 얼굴 굳어지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막막할 때가 많아. 미안할 일이 자꾸 생기네.
여유가 부족한 것 같아. 체력 탓인지, 분위기가 붕 뜨는 걸 가라앉히느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다그친다고 너희가 꼭 잘하리란 법도 없는데, 자꾸 스스로 알아채고 여유를 가지려고 애쓸게. 안 그럼 엄청 후회할 테니까.
선생님이 너희를 보면서 마음이 참 따뜻해지면서도 아픈 듯, 말랑말랑해지던 기억들이 많아. 웃음이 저절로 나는 재미있는 기억들도 있고. 이렇게 편지처럼 몇 가지라도 써 볼게. 너희에게 차마 전하진 못하겠지만 말이야. ^^
지난번에 ‘토닥토닥 카드’를 가지고 서로 카드에 적힌 말을 해주며 카드를 바꾸는 놀이를 했잖아. 너희끼리 잘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어색한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피하는 친구들도 있었지. 그게 안타까워서 한 번이라도 하는 경험을 시켜주려고, 카드를 선생님한테 다시 내도록 할 때 선생님이랑 한 번씩은 꼭 하도록 시켰잖아.
근데 나는 너희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볼까지 붉어지면서 웃을 줄은 몰랐어. 나는 그냥 카드를 읽어주며 손을 잡고 웃으며 눈을 맞춘 건데, 마치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된 고백을 받은 듯 기뻐해주는 너희 표정을 보며 놀랐어.
너희를 행복하게 해 준 게 기쁘면서도, 내가 그렇게 칭찬을 자주 해주지 않았나, 따뜻한 말을 평소에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해준 일이 잘 없어서, 이런 표정을 처음 보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있지.
그래서 참 미안하고 아팠어. 얼마든지 사랑할 힘을 가지고도 충분히 내어주지 않는, 못난 어른인 것 같아서.
어쨌든, 우리가 작은 말고 몸짓으로 이렇게 서로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야.
그리고 지난번에 00이가 몇 번이나 예술제 연습을 하려고 앞에 나와서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고 떨 때, 난 너희가 혹시나 국어 시간에 가끔 그런 것처럼 재촉하거나 한숨을 쉰다거나 할까봐 걱정을 하며, 그 친구 옆에서 계속 격려를 하던 중이었지.
그런데 너희 중 몇 명이 우리 예술제 마지막 순서인 “넌 할 수 있어” 가사를 흥얼거리듯 속삭이며 그 친구를 바라봐줬잖아. 그 때 정말 감동이었어.
그리고, 너희가 방해할 거라고 미리 견제하고 있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고 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지. 요즘 부쩍 너희 마음이 많이 큰 것 같아. 참, 예술제 날엔 역시 믿은 대로 해내는 00이 모습이 벅찰 만큼 감동이었어! 너희도 그랬지?
선생님은 너희랑 글쓰기랑 시 쓰기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너희가 글 쓰는 걸 어려워해서 많이 하진 못했네.
그 때 비가 엄청나게 내려서 간신히 학교에 온 날이 기억나니? 너희가 빗줄기에 잔뜩 혼나고 축축한 양말로 교실에 한 명씩 들어올 때, 그 날은 시를 써야 하는 날 같아서 ‘비’를 가지고 써 보라고 하니 쓰고픈 말이 정말 많았나봐. 웃긴 시가 많이 나왔지. 읽어주니까 정말 좋아했었잖아.
그때 너희가 제일 좋아한 시는 비가 하늘에서 내린 킹콩과 하느님 오줌이라고 했던 거였고. 어떤 아이는 지옥탕이라고 하고, 어떤 아이는 비가 뜨거운 느낌이 들고 냇물처럼 흘러가는 걸 쓰고... 다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싫었다고 했지. 태어나서 처음 맞아보는 폭우였으니 당연할 거야. 언젠가는 너희가 더 크고 몸에 열기가 넘쳐, 달음박질이라도 하며 선뜻 빗물을 맞으러 빗속으로 뛰어드는 날도 올까?
그런 웃긴 시들도 좋아하지만, 너희가 동시집을 함께 읽다가 탄성을 내며 좋아했던 시 중 하나가 ‘늦게 피는 꽃’ 이었지. ‘우리 엄마가 이걸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혼잣말 하는 아이도 있었어. 그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아이들을 다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 앞에서 자꾸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도 되기 싫었던 ‘따분하고 재미없는 선생’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단다. (선생님은 공부 하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임)
늦게 피는 꽃
김마리아
엄마,
저 땜에 걱정 많으시죠?
어설프고 철이 없어서요
봄이 왔다고 다 서둘러
꽃이 피나요?
늦게 피는 꽃도 있잖아요
덜렁대고
까불고 철 없다고
속상하지 마세요
나도 느림보
늦게 피는 꽃이라면
자라날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철들 시간이 필요해요
이만 총총.
다음에 또 이어서 쓸게.
오늘은 왠지 마음이 뜨뜻 말랑해진 채 글을 썼나봐.
다음엔 좀 더 웃긴 이야기를 써야겠어. ^^
이 그리다 만 그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