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수 있는 용기-6]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고 싶다.
즐겨 보는 '책그림'이라는 채널이 있다. 네이버 tv와 페이스북 등에 책과 영화의 핵심적인 내용을 5분 남짓한 동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채널이다.
그 중 '사람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있는데, '상자 밖에 있는 사람들(아빈저연구소, 위즈덤아카데미)'이라는 책을 모티브로 한 영상이다.
https://www.facebook.com/drawthebook/videos/716160348573180/
'상자 안/상자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시로 나왔던 일화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버스에서 편히 앉고 싶은 사람이 2인용 자리에 한 자리에는 짐을 놓고 혼자 앉아 있는데, 큰 가방을 들고 땀내가 나는 등산객 무리가 버스에 탄다. 그들이 차례 차례 자리에 앉고 그의 옆 빈자리를 바라보지만, 그는 앞쪽 빈자리에 등산객이 앉기를 바라며 모른 척 시선을 피한다.
아마 그들이 내 옆에 앉으면 성가시고 불편할 것이니, 내가 버티고 있으면 그들은 조금 불편하겠지만, 잘못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내가 편안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 순간 그가 사람을 보는 관점은 어떠했을까? 하고, 영상 속 목소리가 우리에게 묻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동등하게 보고 있었을까?
그 대신, 그는 다른 사람을 자기도 모르게 성가신 존재, 내 편안함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는 피곤하고 힘들 때, 감정적 동요를 겪을 때 등 많은 상황 속에서 다른 사람을 '사람'보다는 위협적인 외부의 대상, 심지어는 '적'으로 여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상자 안에 있다'.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외부의 불쾌한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버스에 앉았던 사람이 등산객들에게 여유롭고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들도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인지했더라면 분명 위와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다.
사실, 모른 척 하고 앉아있다 해도 결국은 누군가에 의해 찜찜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결국 억지 양보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타인을 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그 사람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은 더 너그럽고 편안해진다.우리가 상대를 '상자 밖'에서 있는 그대로,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존중'을 가지고 대할 때 서로 더 행복해진다. 양보라는 결과가 같다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 교사가 사람들을, 특히 학생들을 대할 때도 이 상자 안, 상자 밖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체력이 고갈될 때, 정신과 마음이 지치고 닳아 있을 때,
학생들이 하는 똑같은 말과 행동이 마치 '나를 괴롭히려는 의도', '친구를 못살게 굴려는 의도', '상황을 망치려는 의도'로 왜곡되어 보일 수 있다.
이럴 때 교사는 가만히 있다면 자연스럽게 상자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고는 스스로의 마음이 괴로워지도록, 상대방이 원망의 대상이 되도록 내버려둔다. 자기도 모르게 괴로움을 자처하는 셈이다.
"내가 더 무섭게 할 거야!" "난 힘겨루기에서 이길 거야!"
"휴..." '계속 이럴 필요가 있는 걸까?'
"일부러 나를 성가시게 한다는 생각은 그만. 내가 먼저, 상자 밖으로 나와야겠다."
"상자 안에서 나와 봤어. 허무할 정도로 별 것 아니야."
오히려 괴로운 마음 대신 이해심과 강함이 들어앉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동물적으로' 상대방도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만, 내가 상자 안에서 밖으로 나와야 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을 뿐이다. 그리하여 어지럽혀진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내느라 뒤늦게 고생하곤 한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자 안에 갇힌 나 자신을 위해, 상자 밖에서 편안히 호흡해야겠다.
뭐, 그러다보면.. 알고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이 또 다른 상자 속일 테고, 나는 또 다시 나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