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산다-4] 아이들에게 '옮다'
어쩌다보니 두 해 연속 6학년 담임을 하고, 올해는 갑자기 회춘(?)하여 2학년 담임이 되었다. 이 아이들의 정체는 혹시 별에서 온 외계인?하고 의심해보며 정신없이 1학기가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처음엔 방긋방긋 웃던 내가, 아이들에게 짜증을 퍼붓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 싫어질 무렵 방학이 시작되었다. 야호! 그런데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새 2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을 준비하려 출근을 해서 교실 청소를 하고 있으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교실의 규칙이나 일과들이 하나하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아이들 머릿속엔 이미 방학 숙제도 1학기에 있었던 일도 거의 아무것도 안 남아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2학기 첫날을 준비했다.
드디어 고대하던 (?) 개학식 아침. 매일 나보다 1등으로 오던 아이부터 뒤늦게 씩 웃으며 등교해서 너, 지각이야. 그럼 네~~하고 경쾌하게 웃어넘겨 버리는 이이까지 모두 반갑게 맞이하고, 정신없이 첫 하루가 지나갔다. 천천히 개학할 틈도 없이, 2학기 학예회 행사 준비부터 시작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스스로 발문하는 모습과 내 정신상태(?)를 돌아보니, 확실히 작년에 비해 변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① 과장된 목소리와 말투, 나도 모르게 스토리텔러가 되어 있다.
개정 수학 교과서는 매 단원을 스토리텔링으로 엮고 있는데, 1학기 때 수업을 할 때는 듣기 자료가 내가 열심히 읽어주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고 했다. 녀석들, 참 솔직하다.
그런데 2학기 들어서 수학책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돌아다니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과 몸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을 들려주기 전에 뜸을 들일 때는, 이것이 스토리텔러의 희열인가, 하는 기분은 덤이다.
② 나의 정신연령도 2학년이 되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왜 재미있을까? 하는 일에 자지러지듯 웃고 쓰러지는 아이들. “이게 진짜 재밌어?” 라고 어이없다는 듯이 내가 물어봐도 진짜로 예/아니오를 묻는 질문인 줄 알고, 순수한 얼굴로 해맑게 “네! 진짜 재밌어요!” 해서 말문이 막히곤 했다.
고학년에 비해 작은 동기에도 몰입해서 잘 움직이고, 반면 조금만 수준 높은 단어나 농담을 거의 못 알아듣는 이 아이들이 참 이해가 안 되었다. (코딱지, 똥, 방귀 같은 단어를 쓰기만 해도 그들에겐 최고로 재밌고, ‘야 이 말랑말랑 코딱지야!’가 심한 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라? 내가 이제 그들과 비슷한 이유로 웃고 비슷한 감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아기 엄마가 된 기분이 이와 비슷하려나? 어쩌다 만화영화를 보게 되면 슬랩스틱 개그 부분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분명 개그*서트를 화난 듯한 무표정으로 보다가 지루해서 꺼 버리고, 슬랩스틱에 재미를 전혀 못 느끼던 나였는데. 어느새 아이들에게서 웃음 많은 것이 옮아 버렸다.
반면 작년에는 비판적 사고 능력이 발달하고, 냉소적이지만 나름의 유머감각이 있는 6학년의 감성에 옮았는지, 사물을 좀 삐딱하게 보며 이야기하는 습관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청소년의 엄마가 된 듯 정서에 극히 나쁜 내용을 여과 없이 방송하는 매체의 실태, 청소년들의 비행에 대한 뉴스나 주변 소식을 들을 때면 바짝 귀를 기울이게 되곤 했다.
③ 아이들은 나의 거울이다.
내가 조용조용한 말투로 말하면 바로 귓속말로 따라하고, 내가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지면 같이 크게 떠드는 아이들. 내가 고맙다고 하고 잘하는 부분에 집중하면 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아이들. 내가 자꾸 폭발하고 못하는 부분에 집중하면 서로 지적하는 모습으로 답하는 아이들. 내가 화를 내고 때로는 윽박지르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도 일부러가 아니라 정말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들.
(고학년이라고 다르지 않겠지만, 학교에 더 익숙하며 여러 가지 상황 변수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고, 마음을 감추는 것에 더 능한 편이니까.)
이런 특성이 나도 모르게 몸에 익으면서, 아이들이라는 거울을 부끄럽지 않게 바라보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개학식 날, 지난 학기에 내 마음을 시험에 들게(?) 한 아이가 등교할 때 행여나 묵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도록 환한 웃음으로 대했다. 아이는 쑥스러워 하며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그러다가 집에 갈 때는 나에게 접은 종이를 불쑥 내밀고 도망치기에 혹시 또 누구를 이르는 내용인가? 긴장해서 열어보니, 그림으로 그린 러브레터였다. 행복한 첫날을 선물해줘서 참 고맙다.
문득, 내가 너무 괴로워했던 해의 아이들에게 참 미안해진다. 미안해 할 여유도 없을 만큼 나를 소진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좀 회복도 되고 내가 해내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2학기도 매일 다른 일의 연속이 때론 전쟁이겠지만, 지금처럼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
모든 선생님들, 화이팅!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그 행복을 닮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행복해져요. 그래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