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뚜벅이여행-1] 방학식을 끝내고, 눈물폭탄이 터졌다.
학기말을 앞두고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교사들이 대부분 그 크기와 정도는 달라도 공통적으로 소진을 겪는 시점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내 존재가 위협받는 느낌을 받았다. 상담 및 심리이론, 뇌과학 이론, 자존감 등등 여러 알량한 지식을 빌려도 그 느낌을 완전히 극복해 낼 수 없었다.
왜 그렇게 힘들까 나에게 물었다. 물론 새로 옮긴 학교에서 벌이는 사업들에 적응하는 일, 새로 맡은 아이들이 쉽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도 정말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충분하다는 확신이 드는 때가 없었다. ‘바라는 바에 비해 충분하게 열심히 하지 못한’ 점들이 자꾸 눈에 걸릴 뿐이었다. 능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면,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고 자기 합리화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합리화의 적정선 역시 찾기 어려워 결정장애를 겪었다. 벌써 9년차인데, 곧 10년째인데, 내가 계속 이렇게 흔들리며 걸어가도 되는 걸까?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 정도쯤이야 할 수 있다 했는데 막상 하려고 하면 에너지가 바닥을 보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잦아졌다. 당혹스러웠다.
때때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악을 쓰는 운동 선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전인데, 운동경기는 아직 중반부이고 이미 혹독한 점수차이를 극복해 낼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경기 포기를 선언하지 않고 최악의 점수차를 면하기 위해 끝까지 최선의 모습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처한 선수랄까?
마음이 잔뜩 무거워지는 아침이면, 눈을 뜨고 나서부터 출근하는 내내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렇게 마음이 무거워도 막상 하면, 이랬던 것도 잊고 몰두해서 결국 해내는 거 알잖아.’
‘내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 내고 강하게 버텨야 교실도 무너지지 않아.’
‘정말 무너질 것 같으면 나를 응원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잖아.’
방학 날짜가 차츰 차츰 다가왔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한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막힌 생각 등이 정리되지 않을까, 아이들도 나도 많이 지쳐 있으니 휴식이 주는 선물이 클 거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방학하는 주까지 마음이 계속 바빴고, 실제로도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방학식 날 바닥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몇 가지 일어났다. 여기 차마 적을 수는 없지만, 정말 ‘탈탈’ 털렸다.
선배 선생님이 내 상황을 알고 상담과 격려를 해 주셨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번 학기 동안 ‘잘했다, 유루시아. 잘했다’라고 말하며 두 손을 어깨에 토닥여 주라고 하셨는데, 장난처럼 웃으며 해보려 했지만 입이 얼어붙은 것처럼 잘했다는 말의 ‘잘’도 말할 수 없었다. 도저히 내가 잘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와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갑자기 뭔가 울컥 올라오더니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엉엉 눈물폭탄이 터졌다. 좀처럼 그치기 어려웠다. 몇 달 동안 참아야 했던 어떤 감정이, 나 너무 많이 참았다고 한꺼번에 쏟아져나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폭력적이었구나. 해낼 수 없는 게 있을 텐데도 억지로 해내라고 강요만 하고.’
눈물에 퉁퉁 불어 약해진 마음으로, 앞으로 십 년 넘게 이어져야 할 이 경기에서, 휴식 대신 포기 선언을 하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 물어보았지만 답하기 어려웠다. 포기 선언은 잠시지만 달콤하게 들렸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출발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날짜로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예쁜 곳에서 혼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숙소를 검색했다. 살면서 여행하거나 나다닌 적은 많았지만 오로지 혼자 여행한 적은 당일로 다닌 것 외에 한 번도 없었기에 내게는 나름 과감한 시도였다.
사실 여태 내가 다니던 여행은 뭔가 ‘소유’하고 싶은 여행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맛있는 음식을, 행복한 시간을, 기분 좋은 기억을....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서 소유하고 싶어 여행을 다녀오곤 했다. 이번 여행은 그저 그 동안 폭압에 짓눌린(?) 내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오랜만에 ‘고독 연습’도 해 보고 싶었다.
내게 종종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는 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내게 몇 년 전 정말 좋다고 한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가 바로 ‘검색말고 사색, 고독 연습’ 이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사람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할 때 방법을 외부에서 찾으려 애쓰며 ‘검색’하려 하지만, 세상과 잠시 단절한 채 스스로에게 ‘왜’를 질문하다 보면 그 답을 스스로가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실험과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는 줄거리다. 그때 스스로 생각해보며 이것저것 좋은 것을 얻어냈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약간의 기대를 품고, 홀로 뚜벅이 제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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