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맹 탈출_08] 나와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 (1)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 학교 옆 큰 병원으로 숙직기사님 병문안을 다녀왔다. 주말에 출근해도 언제나 반갑게 문을 열어 주시는 분, 오후 5시(주말)가 지나면 자동으로 차단되는 교실 전기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올려주시는 분, 그 분이 초기암 수술로 회복중이시다. 아프신 중에도 병원 10층에서 학교만 쳐다보고 계신다 했다.
8인실은 말 그대로 8인실. 사방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왼쪽 침대는 어머니의 격앙된 목소리와 고소장 오가는 대화로 보아 학교폭력사건으로 학생이 누워있는 듯했고, 건너편 침대에는 어제보다 혈색이 좋아지신(다녀가신 의사선생님이 그러셨다.) 한 아버님이 부인 곁에 누워 계셨고, 오른쪽 침대는 젊은 남자가 휴대폰으로 TV를 보는 것 같은데 너무 시끄러웠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위수술 덕분에 물도 제대로 드실 수 없는 분이 음식냄새 맡으시는 것도 곤욕이겠다 싶어 병원 1층 로비로 가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밖이 시끌벅적하였다. 제 1회 <건강나눔 문화주간> 행사가 바자회와 무대공연으로 한창이었다. 한 바퀴 바깥 바람 쐬며 함께 돌아보다 동물원 콘서트 19:00~20:00가 알림판에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와! 내가 좋아하는 동물원!', '테잎 늘어지게 듣던 그 노래들!' 숙직기사님과 인사를 나누고도 1시간을 더 기다리기로 했다. 난치병 어린이 후원회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입서를 쓰고, 바자회에서 반홍시 한 상자와 작고 귀여운 귤 한 봉다리를 만원에 득템하며 참을성있게 기다린 보람은 6시 57분부터 폭발하였다. 건물 안으로도 들리는 악기소리와 노래 조율 소리를 통해 그들이 온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중후함 속에도 청년시절의 젊음이 아직 남아있는 모습으로 그들은 학교 옆 큰 병원 행사에 드디어 나타났다.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어디쯤 있을까~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너를 다시 만났었지~
변해가네 변.해.가네.
혜화동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널 사랑하겠어 언제까지나~
거리에서 그리운 그대 아름다운 모습으로~
흐린 가늘 하늘에 편지를 써어어~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마아안~
이 중 내가 가장 많이 따라부르던 노래는 시청앞 지하철역에서와 혜화동이다.
듣는 노래보다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콕콕 박히고 노래 가사 속 이야기들이 한 번 쯤은 내 인생에도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날들이 있었다. 같은 노래를 반복하여 들어도 그 감정을 오롯이 느끼며 노래와 하나가 되던 시간들로 가득찼던 시절이 있었다. 2017년 10월 20일...어린 시절 부르던 만화주제가들이 언제 어느 때 불러도 빠짐없이 기억나는 것처럼, 동물원의 가사는 내 몸 속에 처음 듣던 그때부터 체화된 듯 술술 뽑아져 나왔다. 한 노래, 한 노래 부를 때마다 장소며, 사람이며, 그 때의 내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나는 순간...<동물원>을 이미지로 검색하면 동물원 사진만 잔뜩 나오는 요즘에 따라 부르니 더 옛날 생각이 간절해졌다.
변해가는 '나'라도 어느 장소, 어느 접점에서 특정 시기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때가 있다. 이럴 때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추억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난 목요일, 가을 소풍에서 산길을 걷던 중 응팔의 걱정말아요, 그대와 음악책에서 배운 강강수월래를 신나게 불러제끼던 우리반 남자아이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 우리의 가을 소풍을 그 노래들로 기억할 수도 있겠다.
(노래를 삽입했어요. 들으면서 읽으세요. 광고가 조금 성가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