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단지 건네던 소년
누구나 한 번쯤은
무심코 길을 걷다가 누군가 건네는 전단지를 받아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저는 그 전단지를 받을 때마다
늘 하게 되는 한 가지 갈등이 있습니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전단지인데 이 전단지를 받아야 할까, 말아야 할까?
내가 전단지를 받아서 그냥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드리는 것이 나눠주시는 저 분도 덜 무안하실 것이고,
또, 이 추운 날씨에 (혹은 더운 날씨에)
저 전단지 나눠주시는 분도 빨리 전단지를 다 나눠주셔야
집에 가셔서 편히 쉬시지 않을까?
한편에서는 나름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그 전단지를 만드신 사장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힘들게 돈 들여서 만드신 전단지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받아서 그냥 휴지통에 버린다면
그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이렇게 상충하는 논리 속에
결국은 그 때, 그 때 상황 따라 결정하기로 나름의 타협을 하였지만
여태까지 길을 걷다 전단지 나눠 주시는 분의 손을
받아들일 때마다, 혹은 받아들이지 않을 때마다
늘 제 마음 속에는 이러한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 겨울 서울이 영하 17도까지 떨어졌다던 가장 추웠던 날,
오랜만에 나간 서울 종로 3가 젊음의 거리에서
20살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그 소년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심히 전단지를 나눠드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받자마자 버리고 간 바닥에 떨어진 전단지를 하나 하나 다시 줍습니다.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드립니다.
다시 줍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전단지들까지 줍습니다.
또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조심히 그 전단지들을 나눠드립니다.
순간 내가 받아서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빨리 저 전단지를 다 나눠주셔야 저 분이 집에 가셔서 쉬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던
저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과거에 보았던 분들 중에서도
지금의 저 소년처럼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하시고 계신 분들도 분명히 있으셨을텐데...
그 분들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했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소년의 모습에서 성실과 양심을 배웁니다.
그 소년의 모습에서 뜨거운 감동을 느낍니다.
물론 그 때 그 소년이
전단지를 제작하신 사장님의 아들일 수도 있고, 가까운 지인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
이 순간만큼은 비뚫어진 시각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을 거울 삼아
나중에 제가 만나게 될 학생들과 대화할 때에도
비평도 물론 좋은 것이지만,
어떤 때에는 좋은 모습들을 좋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한다고
꼭 강조해서 가르쳐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