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추다] 떠드는 학생이 싫어서 매일 고자질을 했던 K
유독 '정의로운' 친구들이 각 반에 한 명씩 있다. 절대로 그 학생들을 비하하거나, 유별나다고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담임교사로서 모두를 품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의감'이 넘치는 특정 학생의 짜증과 외침은 상당히 괴로울 때가 있다. 이들을 달래거나 만족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데, 왜냐하면 교실 전체를 엄격하게 통제해야 하며 조금의 여유나 관용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사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그냥 넘겨도 될 일들이 이 아이들의 눈에는 꼭 '잘못된 것', '부조리'로 비칠 때가 있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아 씨, 진짜 짜증나네, 아아!!"
"진짜 시끄럽네, 조용히 좀 해라. (선생님을 보며) 쟤는 맨날 선생님 없을 때 애들 괴롭히고 떠들어요."
"쟤는 좀 혼내주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쟤 정말 엄청 혼나야 합니다."
K가 그런 학생이었다. K는 자존심이 강했다. 게임을 하다가도 자신이 술래가 되면 멋쩍게 웃어 넘길 줄 몰랐다. 약간의 엷은 미소를 띠다가 이윽고 표정이 굳어지면서 화를 냈다. 당연히 친구들은 이런 K의 태도가 싫었다. "선생님, 쟤 또 화내요", "쟤는 맨날 게임에 지기만 하며 저래요", 그럼 K의 반응은 "네가 반칙했잖아!!", " 너네들이 이상하게 했잖아!", "아이 씨...." 하며 얼굴을 벌겋게 하고는 화를 내거나 억울한 눈물 몇 방울을 흘리는 것이었다. K는 바르고 점잖았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유독 짜증과 함께 불평을 늘어 놓았다. 떼를 쓰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교사가 보기에 '화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궁시렁'거렸다. 이런 표현이 그 학생에겐 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궁시렁댄다며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시민일지도 모르는 아이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풀어주고,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는게 또 나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과 달리 K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 사회를 비난하는 여러 시민들의 혐오표현이나 부정적 견해를 볼 때마다 나는 K가 떠올랐다. K의 마음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주지 못하면, K는 경도된 생각으로 사회를 볼 것이 분명했다. 물론 타고난 비판적 성향 때문에 토론 수업을 할 때에는 다른 학생이 살펴보지 못한 부분을 예리하게 짚어줘서 참 고맙기도 했지만, 그 삐딱함이 지나쳐 아이들이 불편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과 특성이기도 했겠지만, 유독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은 거칠게 항의하고 표현하는 스타일이 있었다. 이런 내 성향을 가까운 동기들은 잘 알고 있었다. 나의 투덜댐을 계속 듣다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가 나에게 이런 표현을 했다. "너는 참 염세적이야,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바라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보고 싶어서 보는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그저 주변사람들이 농담삼아 나에게 말했던 말들을 이제는 진짜 인정해야 할 때이기도 한데, 한결같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에게 '속에 화가 가득하다'고 표현했다. (그 가득한 화는 지금도 풀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K의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다. 교사가 학생을 싫어하거나 학생의 단점을 고쳐주려는 행위는 교사 내면에 잠재된 같은 성격이 학생에게서 보일 때라는 말을 그때 떠올렸어야 했다. 나는 내 자신을 직면하지 못하고 학생에게 투사한채 화를 내고 야단을 쳤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학생도, 나도 참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인식하는 것도 잠시뿐, 아마 내일이 되면 나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들의 잘못을(싫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의 싫은 점을) 지적하면서 화를 내고 말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깊어진다. 분명 누군가가 불만을 느끼는 것은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느낀 불만이 다른 이에겐 사소한 것으로 여겨질 때, K는, 또 나는, 더욱 화가 나고 마는 것이다. K에게 전하고 싶다. 뒤늦게나마 내가 너의 화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내 화를 이해해줄 또 다른 동료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