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하와이 <장기재직휴가>

니가 가라 하와이 <장기재직휴가>
장기 재직 휴가가 뭔지도 몰랐다. 뜻을 몰랐겠냐만은...
장기재직휴가라는 혜택이 일개교사에게까지 돌아올 줄을 몰랐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일지 모를 것을 교사라는 이유로, 방학이 있다는 이유로
곁에 두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10년 이상 20년 이하의 경력을 가진 국가공무원에게 주는 5일이라는 휴가는
나에게 물음표로 먼저 다가왔다. "이거 써도 되는 거 맞아?"
교대에서 부터 늘 가스라이팅이 아닌 가스라이팅을 받으며 생존해온 교사들에게
스스로에 대한 검열과 절제는 휴가를 줘도 못먹는 사람으로 만들것만 같았다.
"가즈아!"
아내와 긴 상의를 하지 않았다. 부부교사인 우리는
너는 내 핑계, 나는 니 핑계로 한번도 떠나보지 못했던 가을 해외 여행을 실행시켰다.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기간제를 구해야 한다는 문제로 난항도 있었고,
일주일치 일을 미리 해놔야한다는 부담, 바쁜 일정중에 여행준비를 하는 것도 쉽진 않았다.
결국 시간은 어찌 어찌 흘렀고,
무사히 하와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다.
마치 신혼여행 같았다. 이는 절대 로맨틱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 떠날 때까지 정신없는 그런 상황(결혼해보신분들은 알지 않을까...)
이륙이 끝나고 안전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띵" 알림음이 울리자 긴장이 풀렸다.
하와이 도착해서도 헤쳐나가야할 많은 일들이 떠오르지만 잠시 그 순간을 음미했다.
"휴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가면 늘 체험학습의 느낌으로 미션 클리어를 목표로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의무적으로 해변에 누워 있고, 호텔 수영장은 돈아까우니까 꼭 가보고, 인터넷에서 본 맛집과
필수 코스는 응당 들리되, 나만의 핫스팟을 또 찾아야 하는 말 그대로 현장체험학습과 같은 여행 속에서
유유히 해변에 누워서 책을 읽고 햇볕을 마시는 외국인들이 부러웠다.
이번에는 기어코 그리 해보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것을 버려보았다.
계획은 최대한 단순하게 가져갔다. 이건 엠비티아이의 문제가 아닌 예약이라는 것이 주는 압박감이 있기에
꼭 예약해야할 것이 아니라면 일정에 물음표를 남겨놨다. 가서 상황에 따라 그 빈칸을 채워가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빈칸으로 둬도 되지 않을까? 나답지 않은 생각을 해버렸다.

핸드폰을 손에서 놓았다. 가끔씩 업무 연락이 오긴했지만 시차를 핑계로, 로밍을 핑계로 최대한 핸드폰을 멀리했다.
그 좋아하는 영상도 사진도 최소한으로만 찍고 눈에 마음에 담으려고 했다. 그냥 뭔가를 더 하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던거 같다.
결론적으로는 많은 순간들을 핸드폰에 담지 못했지만 가슴에 아쉬움을 더해 담았으니 이또한 나쁘지 않다.
아쉬움은 늘 진한 여운을 남기기에 찍어놓고 보지 않을 사진보다 아쉬워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추억이 더 삶에 유용할 수 있다.
계산을 포기했다. 처음에는 예산을 짜고 가계부를 썼지만 어느 순간 부터 의미가 없어지지 시작했다. 물론 돈을 많이 쓰긴 했고
예상보다 넘치는 카드 문자를 받았지만, 우리 내외의 20년의 노고에 대한 스스로의 보상으로써 이를 절제하고 싶지 않았다.
먹고싶은건 먹고 보고싶은건 보고 하고 싶은건 해봤기에 '휴가'가 휴가 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8박 10일 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그 '휴가'는 단순히 해외여행이 아닌 인생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교직을 떠나서 내 삶에 대한 보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의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행과는 다른 '휴가'의 의미를 많은 이들도 함께 찾아봤으면 좋겠다.
'휴가' 일정기간동안 자신의 업무를 멈추고 쉬는 것
나 같은 일버러지한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기어코 해냈다.
교사로써의 일, 남편으로써의 일, 아빠로써의 일들을 최소한으로 줄여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휴가'의 의미를 깨달았으니 이제 작게라도 일을 멈출 수 있지않을까 기대해본다.
비싼 값을 치룬 장기재직휴가는 나에게 '비로소 일을 멈추는 법'을 남겨주었다. #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