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살려!!!

1%의 사실과 99%의 상상의 글입니다.
설사 1%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반은 절대 아입니다 ㅋㅋ
어제 있었던 일이다.
“뭐요?”
교사가 학생에게 들은 말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장난(층층이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 탄 학생들의 이동을 방해하고 잡으러 다니고 소리 지르고)을 치는 학생들, 교사와 눈이 마주쳐도 아무 죄의식이 없는 학생들, 하마터면 닫히는 엘레베이터문에 부딫힐 뻔 한 상황, 하지 말라고 해도 들리지도 않는다. 소리를 쳐봤지만 그냥 도망간다. 내가 무서워 도망가기보다는 자기들끼리의 장난의 연속이다. 그중 몇 명을 불러 세운 내게 돌아온 말이다.
“뭐요?”
“왜요?”까지는 당해봤는데 뭐요는 처음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당황해서 헛나올 수도 있고, 내가 잘 못 들었을 수도 있고, 정말 궁금해서 한 말이라 생각을 해본다.
상황을 듣고 이해를 시키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학생을 보냈다. 수업이 2분 정도 지나버렸다.
여기서 문제는 “뭐요?”가 아니다. 아이라면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는바, 그걸 가르치는 게 교사의 돈값이다.
내가 마음 아픈 건
혼낼 줄 모르는 어른들,
혼날 줄 모르는 아이들,
혼내면 안 되는 세상들이다.
혼낼 줄 모르는 어른들,
훈육은 소리 지르는 게 다가 아니다. 때리는 게 능사가 아니고 겁주는 게 요령은 아니다. 교육학에 엄연히 한 꼭지로 이 나와있는 보상과 처벌, 어떤 보상과 어떤 처벌이 어떤 상황에 필요한 지 계산이 되어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나의 짜증 풀이가 아니라 대상의 교육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날그날 감정에 의한 어른들의 훈육, 그리고 그것에 적응돼버린 아이들이다.
혼날 줄 모르는 아이들.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진짜 전속력으로 달린다)를 불러 세운다. 아이는 내게 해맑게 인사한다.“안녕하세요^^“, ”뛰지 마 위험해‘“,”네!“씩씩하게 대답한 아이는 뒤돌아 뛰어간다. 아동학대, 귀한 자식, 악성 민원 속에서 아이들이 ‘혼남‘의 의미를 잃어버린 걸까. 아님 세상이 바라는 대로 사랑과 관심의 방법이 틀린 건가. 아님 교사의 사랑이 부족한 걸까. 아이들은 혼나는 방법, 즉, 실수를 통해 바르게 성장하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다.
혼내면 안 되는 세상들.
어제 그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어떤 아이가 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들을 부모에게 쏟아내고, 부모는 감정이 넘쳐 학교로 전화를 했다고 가정해 본다.
1. 선생님이 소리침 = 아동학대
2. 선생님 표정이 무서움 = 아동학대
3. 수업 조금 늦음 = 수업권 침해=아동학대
4. 복도에서 훈육함 = 아동학대
5. 내 수업에 늦음 = 아동학대, 직무유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누굴 훈육할 수 있을까. 뭐 세상 뭐든 교사가 다 참 교사도 아님에 인정하고. 세상 모든 학부모가 진상은 아니다. 아이들도 금 쪽이는 절대적으로 소수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장난에 훈육을 함에도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교사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얘들아 그러지 마, 위험해.“
소리를 질러도 뭐요? 가 나오는 아이들에게 저런 애정 어린 말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고 기다려줘야 할까. 그리고 그 사이에 혹시 일어날 안전사고의 책임은 또다시 교사를 향한다.
일부 교사의 화풀이로 체벌을 당하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본보기로 뺨을 맞아야 했던 아이들이 학부모가 된 시기다. 그리고 그 억울하게 뺨을 맞고도 부모님께 더 혼날까 봐 속으로 삭히던 아이는 지금 교사가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다.
현 학부모 세대의 학교에 대한 경계와 일부 교사에 대한 서운함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 교사가 아니었다면 항상 의심의 눈으로 학교를 바라봤을 것이다.
학교는 보육이 아니라 엄연히 교육기관이다.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서 교육적 처치를 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학생은 배워야 할 권리가 있다. 숱한 실수를 통해서 조금씩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절한 피드백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구두 경고. 분리조치. 상담 조치. 귀가 조치?
복도에서 뛴 게 분리조치 그 정도의 일일까.
뛰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동학대 정도의 일일까.
아이들이니까 뛰는 장난쯤이야 정도의 일일까.
혼내야 할 숱한 일에 눈 감아야 하는 교사들은
교육자의 양심과 개인의 안위 사이에서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놓치고 영어 단어만 외우는 아이들은
성장의 기회와 방관의 즐거움 사이에서
그저 진심으로 내 자식이 잘 되기만 바라는 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오해와 보이지 않는 진실 사이에서
모두가 참 힘들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