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기
서성환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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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4 00:57

나는 하기초에 발령이 났다.
하기초라는 곳 자체는 객관적으로도 좋은 학교임이 분명하다.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문화까지 많은 사람들이 서로 오고 싶어 하고
집에서도 가까워서 나로써는 최고의 학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그저 축하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사연이 있다.
그동안 쌓았던 공든 탑이 무너지고 나서 발령난 학교라
축하도 위로도 해줄 수 없는 그런 학교가 되어 버렸다.
그 탑을 무너 뜨린건 나다.
양손 가득 욕심을 쥐고 그것을 능력이라 치부하며 계산기를 두드렸던,
간절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교만했던 나에게
세상이 날려준 간결한 잽이었다.
잽 한방에 무너진 나는 눈을 뜨니 하기초였다.
평소 좋아하던 분께서 내게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해줬다.
자신이 하기중학교에서 근무할때 늘 하던 건배사
하: 하기로 했으면
기: 그냥 하기!
농담으로 위로로 해주신 말이 내 가슴에 깊게 들어왔다.
맞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거다.
숭고한 정신도 합리적인 설득도 치명적인 계기도 필요없는 것이었다.
늘 그렇게 계산적이었는 나에게 그냥 하기,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기는
'의미부여'에 집착하던 내게 하나의 간결한 공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그냥 하는 일들, 그렇게 그냥 하면서 살아가는 나를 기록하며,
나처럼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기회를 놓쳐버리는 사람들에게도
위로와 용기가 되어주고 싶다.
그런 글을 왜쓰냐고?
하기로 했으니까.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