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겨진 기분] - ep8. 왕관의 무게
“왕관을 쓰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초능력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능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교실에서는 초능력은 아니지만 나름 특권계층이 있다.
바로 학급임원이다.
른들의 눈으로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계급장이 된다.
반장, 부반장이 되면 교실 생활이 조금 달라진다.
이름 대신에 반장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부여받는다.
이런저런 심부름으로 힘들 때도 있지만 많은 선생님들과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서는 특별 미션을 받기도 한다.
반장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의 보호막 안에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요즘은 형평성의 문제로 많이 없어지는 추세이지만 어릴 적 한 학급의 리더로서의 좋고 나쁜 경험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큰 도움이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반장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후보가 되는 것은 본인의 의사지만 선출되는 것은 대다수 반 아이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뽑은 아이들이나 뽑힌 아이나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애석하게도 누가 뽑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임원이 아닌 아이들에게 내가 원치 않은 후보가 선출되었음에도 그를 믿고 따라야 한다는 민주시민의식을 알려주기에는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어른들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결국 책임을 강요받는 것은 반장이다.
다른 아이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들을 느껴보는 대신에 나름의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고 생각했다.
반장이 내게 굳이 표현 안 해도 학급 아이들의 불만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느낄 수 밖에 없는 불편함도 많았을 것이다.
그럼 에도 나는 아이가 스스로 잘 그리고 씩씩하게 이겨내서 더 멋지게 성장하길 바랐다.
난 우리 반 반장을 믿는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너무 많이 달랐다.
겉에서 보는 학교라는 시스템과 구조만 비슷할 뿐이었다.
당장 매일 같은 옷을 입어야 했다.
내가 멋을 부리고 다니지 않았지만 아침마다 용의단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가
슴팍에 달린 명찰의 색깔로 교내의 위아래가 명확하게 갈렸다.
남학생으로만 가득 찬 그 곳은 내게 이름 모를 정글과 같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도 없어 보였다.
시작부터 오만가지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중학교 교실이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소 거칠어 보였다.
학기초라 아이들 사이에 서열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기싸움이 가득했다.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위아래 줄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강한 아이들은 그들대로 약한 아이들은 그들의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걔’였다.
보일러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교실은 아무리 옷을 추슬러봐도 냉기가 가시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나는 반장이 되었다.
당연히 내가 반장선거에 나섰을 리 없다.
그 날 오전에 선거를 통해 A가 반장으로 뽑혔다.
그리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 일어났다.
선생님께서는 종례시간에 반장을 바꾸셨다.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였다.
급하니 대신 반장할 사람을 성적순으로 불렀다.
서너 번째 내 이름이 호명되고 비교적 순해 보였는지 ‘네가 해라’라고 하셨다.
무응답은 긍정으로 받아들여졌다.
투표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나는 반장이 되었다.
처음 뽑힌 반장임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눈빛이었다.
반장이란 경험이 없었을뿐더러 한 번도 생각조차 못했기에 자신도 없다.
여태껏 누구 앞에 나선 기억도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 반장이 누군지도 기억 안 난다.
부모님께서도 반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고 크게 놀래셨다.
놀람의 의미는 나도 안다.
해 경험이 돌아보면 인생의 한 포인트였을 지 모른다.
GK지만 당시 난 빠져나올 수 없는 쥐덫에 걸린 느낌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임무를 내려주셨다.
내가 힘이 강했거나 능숙한 반장이었으면 별일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니었다.
하루 중 가장 큰 시련은 ‘떠드는 사람 이름 적기’였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때 시끄러운 친구의 이름을 칠판에 적어야 했다.
이름을 적으면 아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렇다고 아무도 적지 않으면 내가 선생님게 혼났다.
나중에는 요령껏 이름을 적었다가 선생님 오시기 전에 싹 지웠다.
그들에게 난 화풀이 대상이었다.
선생님 몰래 이름을 미쳐 지우지 못할 때면 그 들은 불려가 혼이 났다.
덕분에 선생님이 떠난 쉬는 시간은 내게는 보복의 시간이었다.
수업시간 내내 머릿속은 두려움이었다.
몇몇 거친 아이들은 내게 협박을 했다.
욕도 했고 때리기도 했다.
폭력이 심할 때면 쉬는 시간되자 마자 TV 캐비닛 뒤로 숨어 매를 피했다.
그들은 나 대신 캐비닛에 화풀이를 했고 난 선생님이 빨리 오시길 바랐다.
선생님이 오시면 나는 캐비닛 뒤에서 장난을 쳤다며 꾸중을 들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그들은 육성이나 쪽지로 "쉬는 시간에 디졌어"라고 이야기 했고 난 공포에 떨며 시계가 멈춰지길 바랬다.
정작 쉬는 시간에는 별일 없었지만 45분간의 긴장으로 난 충분히 지쳤다.
우리 반에서 가장 거친 녀석은 언제나, 늘,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주변에는 그의 비위를 맞추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실 짱은 나 같은 힘없는 아이들은 건들지 않았다.
대신 옆에 붙어있는 하이에나 같은 녀석들이 늘 말썽이었다.
그 날 짱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쉬는 시간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던 내 옆으로 갑자기 교실 의자가 날아갔다.
다행히 나는 지나쳤지만 내 앞의 녀석은 그렇지 않았다.
의자에 맞은 친구 머리에서는 피가 났다.
"미안" 짱은 짧게 사과했고 하이에나는 수습했다.
반장인 나와 보건실에 간 그 친구는 장난치다 다쳤다고 했고 담임선생님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내 주변의 폭력은 학교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사주를 그렇게 믿지 않지만 그 해는 나에게 마가 끼어있었나보다.
학교 안팍으로 폭력의 그림자는 나를 쫓아다녔다.
얻어 맞는 놈은 이마에 뭐라도 적혀있나보다.
아니면 그들 눈에는 그래도 될 놈이 따로 보이니라도 하는 가했다.
하교 길 떡볶이를 오백원 어치 사 먹고 만 원짜리 지폐를 냈었다.
그것을 보았는지 잠시 후 나는 몇몇 형들에게 이끌려 놀이터 화장실로 끌려갔다.
매를 맞지 않았지만 가진 돈을 모두 빼앗겼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차라리 떡볶이라도 더 사 먹을걸’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름 용돈을 아껴서 쓴 건 데 그렇게 허무하게 빼앗겼다.
그 무리 사이에 우리반 하이에나가 보였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우산 속에서 횡단보도 신호를 건너려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에나 몇몇이 주변에 모였다.
욕설을 뱉으며 돈을 달라고 했다.
익숙한 멘트 ‘뒤져서 나오면 100원에 한 대’라며 당당히 내게 요구를 했다.
무슨 오기였는지 그날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결국 내 주머니와 가방을 뒤졌고 1700원을 찾아냈다.
그날은 특히 많이 맞았다.
비가 많이 와서 얼굴도 알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돌아갔고 난 결국 1700원어치 매를 맞고서야 집에 갔다.
그 때 맞은 곳은 아직도 흉이 만져진다.
화가 난 부모님은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순찰을 강화하겠다'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다.
폭력의 두려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 날은 집에 가는 길이었다. 으슥하지도 않은 길이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최대한 몸을 사리며 다녔었다.
나보다 키 작은 어떤 하이에나가 내게 어깨동무를 하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또 그런 존재가 달라붙었다.
왜 또 나여만 했는지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돈이 없었다.
그는 별다른 소리 없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나는 야생의 사자에게 공격당하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톰슨가젤이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약육 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고 싶었다.
한 학기가 무사히 지나고 반장이 바뀌었다.
나는 벗어났지만 다른 반장이라는 피해자가 생겼다.
나는 그저 내가 아니라 다행이라며 예전처럼 폭력의 방관자가 되고 싶었다.
그 해 내가 겪어야 했던 모든 아픔들이 내가 반장이라는 왕관을 썼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야 바보같고 힘없던 나를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었다.
교실의 폭력은 반복되었다.
그들에게 폭력의 이유는 그냥 그 들의 눈앞에 있었다는 이유, 그 들의 기분이 안 좋았다는 이유였다.
내가 그랬을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도 선생님께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했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반장 역시 그가 쓴 왕관의 무게를 버텨야했다.
참, 왕관을 쓰고 내가 누린 것이 있냐고?
글쎄, 그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 중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남자들 사이에 서열은 내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저 자가 나보다 강한 사람인가 약한 사람인가를 먼저 판단하게 된다.
론 어린 그 시절 처럼 위아래의 척도가 단순한 물리적 힘은 아니다.
최소한 어른이 되었기에 힘보다 더 강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 이후로 습관적으로 나보다 힘이 쎄다고 판단되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다 한 번씩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면 눈물이 날 정도로 혼자서 감동을 하곤했다.
가끔씩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나도 그토록 미워했던 하이에나가 되어감을 느끼곤 했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섭리이다. 하지만 약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할 수 밖에 없다.
독수리에게 물린 뱀도,
뱀에게 물린 쥐도, 쥐
에게 물린 메뚜기도,
메뚜기에 물린 잡초도
물리면 모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