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거의 가르침 - 프롤로그1
3월 2일, 오늘도 설레임과 걱정을 한아름 안고 교실로 향했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그게 그렇게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앉아 아이들을 만나기에는 설레임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어디 숨어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사이 아직도 3학년 티를 벗어내지 못한 아이들이 하나 둘씩 들어왔다. 나를 보면 짧은 탄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모르게 터놓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나의 존재에 관심조차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또 다시 문이 열리고 차분하게 질끈 묶은 머리에 수없이 빠져나온 잔머리를 귀찮아하 듯 작은 손으로 쓸어 넘기며 한 아이가 들어왔다.
자기소개활동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갈 때 쯤 나는 적잖히 놀랐다. 누군가에게 취미와 특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인 나조차도 쉽지 않다. 취미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특기라고 하기에는 내세울만한 게 없다. 그래서 제일 만만하게 독서, 게임, 운동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독서라고 하기에는 책을 멀리 하지만 확인할 바 없고, 틈만나면 핸드폰 붙잡고 있으니 게임이 취미일 테다. 숨쉬기도 운동이면 취미이자 특기가 맞다. 그러나 그 아이의 취미와 특기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자기소개서를 읽고 나도 알게 모르게 그를 기대하게 되었다. 갓 4학년짜리가 취미와 특기가 그 것이라면 대단한 능력일 것이다. 교과활동에 나와도 고학년아이들도 어려워한다. 아니 중고등학생들도 만만하게 접근하지 못한다. 더욱이 심오한 작업을 요하는 일이라 정신적인 노동도 대단할 터인데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일을 즐겨한다니 너무도 특별한 일이었다. 아이의 능력이 너무도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아이에게 특별 숙제를 하나 내었다. 짧은 망설임 조차 없이 알겠다고 대답한 나의 질문은 “선생님한테 시 한 편 써줄래?”였다.
아이의 자기소개의 수많은 칸 중 무려 두 칸을 채운 단어는 바로 ‘시쓰기’였다. 15년간 교직생활을 하면서 시를 쓴다는 아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었다. 내 모든 인맥을 총출동해도 내 주변에서 시를 즐겨 쓰는 사람 딱 둘뿐이다. 문학에 관심이 있던 나는 아이의 시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이 아이는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하고 싶을까? 국어시간에 시가 나올 때 마다 ‘시는 글로 다른 사람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야’라고 말하던 나이다. 아이가 내 머릿속에 그려줄 그림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렇게 아날로그 시대 연애편지의 답장을 기다리듯 아이의 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 난 a4 용지에 쭈글쭈글하게 적힌 시 한편을 받았고, 두 번의 충격을 더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