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면 하는 그것.
해마다 11월이 되면 학교에서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교원능력개발평가'입니다.
교원능력개발평가, 줄여서 교원평가는 학생, 학부모, 동료교원이 하는 만족도 조사 중 하나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좋았던 점, 바라는 점, 올 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업 등을 서술식으로 적거나 점수로 만족도를 나타내는 조사입니다.
제가 발령을 받았을 때에는 이미 교원평가가 학교에 도입이 되었을 때여서 저는 발령 첫 해부터 교원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 평가주체는 4-6학년 학생, 학부모, 동료교원이었고 모든 평가주체가 점수로 만족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방법은 두 가지로 이뤄지는데 인터넷과 종이설문지입니다. 학교 내에서 응답비율을 높이기 위해서 각 학급에서 지정된 컴퓨터실 사용 시간에 학생들을 데리고 컴퓨터실에 내려가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저는 5학년 학생들의 담임이었는데 학생들이 문항의 의미와 점수의 척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족도 조사 방법과 설문 내용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올해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학생들은 자유서술식 문항에 답변하는 것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점수 체크가 있던 작년도와 비교해보니 자유서술식 문항에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답변한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먼저 제게 좋았던 점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착하다, 재밌다, 없음'이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평은 '디오니소스님, 센스 있게 받아주셔서 좋음'이었습니다. 이 답변은 읽자마자 어떤 학생인지 알았습니다. 학생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을 하려고 했던 점을 학생도 느낀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두번째로, 제게 바라는 점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없음, 재밌게 해주세요.'이였고 가장 인상 깊었던 답변은 '수업이 노잼'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이 글에 담긴 힘든 악플도 있었지만 마음의 평화를 위해 좋은 것만 기억하고자 합니다. 때로는 좋았던 점과 바라는 점이 상충하기도 하는데, 어떤 학생은 '수업시간에 교과서 외에 프린트들을 많이 해줘서 좋은 것 같다'를 좋은 점에 쓴 반면에 어떤 학생은 바라는 점에 '프린트가 지겨움'이라고 썼습니다. 역시 원하는 학습방법이 다양한 학생들을 고르게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에서는 '학교에서 뛰어다니며 단어를 찾은 런닝맨'이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로 이런 수업을 또 계획하지 못해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와 제 수업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대부분 긍정적으로 제 수업을 듣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한편으로는 바라는 점에서 나온 의견들을 학기말과 내년에 반영해서 다음에는 다른 피드백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유서술식 문항의 답변들이 일종의 제 수업에 대한 후기 같았고 후기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저도 1년 동안의 학교생활과 수업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당 만족도 조사를 할 교원의 숫자가 많아서인지 학생이 엉뚱한 선생님을 떠올리고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항상 맛있는 밥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다든가 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데 '체육시간이 즐겁습니다.'와 같은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의견들은 신뢰도가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있기에 저도 제 한해살이를 돌아볼 수 있고 나태해져 가는 제 모습을 다잡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의없는 답변을 읽었을 때 사람인지라 상심하기도 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긍정적인 피드백과 응원들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들은 사라지고 학생들에게 고마워집니다. 이번에 받은 피드백들이 큰 힘이 되어 올 한 해도 끝까지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님들, 겨울방학 전까지 조금만 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