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못 하겠다]5. 웨비나는 연수덕후인 아기엄마에게-
/프로출석러
나는 원래 연수 덕후였다. 그것도 클릭만 하면 되는 온라인 말고 오프라인 출석 연수를 좋아했다. 에듀콜라에 연재했던 지난 교육연극 이야기도 1년에 무려 180시간을 교대로 출석하며 들었던 연수 이야기이기도 한 것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연수에 많이 쏟았다. 신규시절에는 연수 시간도 인정 안 해주는 자율연수를 조금만 궁금하면 신청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주말을 바쳤다.
그러다가 노아를 임신했던 2018년도에 평화교육단체 피스모모를 만나고 2019년에는 피스모모의 프로출석러가 되었다. 물론, 노아도 함께. 당시 한 살 아기 노아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아기여서 웬만하면 외출을 할 때 항상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러다 보니 밖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기가 어떻게 이렇게 얌전히 있어?” 소리를 듣곤 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를 가장 핵심가치로 두고 있는 피스모모답게 아기가 조금 떼를 써도 받아주고 환영해주시는 분위기였고, 심지어는 나 즐겁게 강의 듣고 이야기 나누라고 사회를 보던 대표님이 직접 아기를 안고 놀아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아기 엄마가 되어서도 연수덕후의 타이틀을 지켜냈다.
(오프라인 연수에 가서 뒤쪽에 서서 아기띠를 매고 있는 모습)
(임종진사진가님의 토크콘서트에 참여했을 때는 열심히 참여한(?) 노아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시기도 했어요. 북한에서 찍어오신 귀한 사진을 받았답니다.)
/복직하고도 가능?
하지만 그 열정과 의지와 애정도 복직을 이기진 못했다. 올해 3월 복직을 하고, 새학기에 예정된 연수나 모임 공지를 보면서 한참을 망설였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잠잠해질지 알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새학기에 체력이 남아나지 않을 걱정이 더 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기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다시 서울 가서 강의 듣고 밤 늦게 집에 돌아와서 잔다는 건……. 절레절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쿨하게 포기하지는 못하고 ‘혹시 그 때 가서 내 체력이 남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청을 미루기만 했지만.
그런데 코로나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등교 개학도 미뤄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만큼 새로운 방식의 만남이 시도되었다.
오잉, 웨비나?
/웨비나(Webinar)의 시대
웨비나는 웹(Web)+ 세미나(Seminar)의 합성어이다. 다시 말해 웹으로 진행하는 세미나를 이르는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서 각종 연수뿐만 아니라 모임들이 화상방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나도 화상으로 공부하고 대화하는 방식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벌써 대표 플랫폼 Z**m에 접속한 횟수가 10번도 넘어간다.
처음엔 웨비나, 화상채팅의 방식으로 강의나 모임이 진행되는 것에 만족도가 높았다.
<웨비나는 아기엄마에게 – 좋은 점> 1. 덕분에 아예 신청조차 못 할 뻔했던 모임을 신청했다. 2. 이동시간을 아낄 수 있다. 오프라인 모임들은 보통 서울에서 저녁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니 아기와 함께 참석하고 집에 도착하면 아기가 잠자야 하는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카시트에서 잘 자줄 때도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아기의 체력에 버겁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웨비나가 진행되는 시간도 아기의 취침시간에 아슬아슬할 때가 있긴 하지만, 적어도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없으니 부담이 줄었다. 3. 자유롭게 아기를 돌볼 수 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살짝 비디오를 off하고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옷갈아 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도 가능했다. 4.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 오프라인 자리에서는 아무리 다들 수용해주시는 분위기여도, 아기가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면 내가 더 놀라 주위를 살피며 사과를 하게 된다. 하지만 웨비나에 참여할 때는 아기가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러도 음소거를 해두면 오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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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에 빠질 수 없는 노아! 다들 아가를 바라보고 웃어주고, 반겨주셔서 행복했답니다. 사진 출처: 피스모모 페이스북)
/하얗게 불태웠다.
하지만 막상 웨비나가 끝났을 때 “하얗게 불태웠다”는 소감만 남기게 되었다.
<웨비나는 아기엄마에게 – 어려운 점> 1. 아기는 저녁시간에 엄마 아빠랑 놀고 싶어한다. 나의 욕구와 아기의 욕구는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이 저녁시간을 배움의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지만, 아기는 아빠, 엄마와 놀고 싶어 했다. 나도 출근하고, 아기도 어린이집을 다녀오니 하루 중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기에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므로 웨비나에 적극 참여하고 싶었다. 아기에게 슬쩍 장난감을 밀어줘 보지만 아기는 귀신같이 알아챘다. 2. 아기가 전자기기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또한 노아는 일찍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수없는 영상통화를 해왔고, 일찍이 카메라를 의식해서 사진을 찍으려 하면 울다가도 멈추고 렌즈를 바라보며 미소를 날리고 포즈를 잡는 아는 아기였다. 내가 나름대로 아가 시선의 사각지대에 슬쩍 태블릿을 놓고 장난감, 노래, 몸짓과 표정으로 반대방향으로 관심을 끌어보려 해도 노아는 태블릿을 발견해서 어느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게다가 노아는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교성 최고의 아가이기도 해서 화면에 등장하는 이모 삼촌 어른들과도 인사하고 싶어하니 집중을 잘할 수가 없다. (폰 '주세요' 동작)
엄마 아빠의 시선에 따라 아기가 스마트폰, 컴퓨터, 이어폰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늘어난 것도 단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아기를 안아주려고 하면 내 귀에 ‘삐삐(이어폰)’가 신기한 듯 손을 뻗어 빼내고 자기 귀에 넣어보기도 한다. 키보드는 보이는 족족 눌러본다.
(아기가 입력한 'ㅋㅋ')
(아빠가 뭘 보는지 너무너무 궁금한 노아)
3. 연수듣기+육아=양육자의 급격한 체력소진 그리고 내가 아무리 멀티플레이에 능한 나도, 퇴근 후에 웨비나에 참여하며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놀리는 동을 함께 하다보면 체력이 쭉쭉 줄어든다. 발제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버거우니 내가 깊은 생각을 하며 적용하는 것은 더 어렵다. 피스모모는 참여자들의 서로배움을 중시해서 소그룹토론도 자주 하는데, 그 때도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기만 할 수밖에 없다. 4. 아기의 잠투정 시작=강제 연수 종료 슬슬 아기가 잠을 자야할 시간이 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자기가 하고싶은 대로 태블릿을 맘껏 못 만진다고 엉엉 울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아기를 잠 자는 방으로 옮기며 연수를 종료한다. 5. 나의 하루도 조기종료 아기를 방에 눕히고 옆에 함께 누워서 연수를 돌아본다. ‘아기가 잠들면 잠깐 일어나서 블로그에 한 줄이라도 남기고 자야겠다’생각하지만 이미 하얗게 불태운 나의 체력은 아기가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버티지 못한다. 그렇게 새나라의 어린이와 함께 10시도 안 되어 나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
/그럼 앞으로는?
그러면 아기와 함께 할 때 이렇게 고생하는 웨비나, 앞으로는 신청 안 하겠느냐 물으신다면...
“아니요. 저는 또 신청할 거예요.”
대답할 것이다.
연수를 마치고 다른 사람들의 소감을 듣노라면 부럽다. 생각이 쭉쭉 뻗어 나간 이야기, 새로운 통찰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나와 같은 2시간을 보낸 것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폭풍 같은 2시간을 보내고 났을 때 나에게는 겨우 짧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만 남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문장 하나, 단어 하나도 작은 씨앗처럼 나의 마음에 심긴다. 비록 지금 당장은 큰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해도 그 작은 씨앗이 조금씩 싹을 틔우고 때로는 시간이 아주 지나 돌아봤을 때 꽃을 피우고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간은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는 조율의 시간이기도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발견하고 꿈을 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실 위에 말한 웨비나에 참여하며 힘든 점은, 꼭 웨비나의 문제가 아니라 육아의 어려움이다. 나는 배움의 시간에 100% 집중하지 못해서 아쉽고, 그 시간에 나의 관심을 100% 받지 못한 아기도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아기가 아니여도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금씩 양보를 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둘 다 조금 고생(?)하는 저녁을 보내고 난 다음 날은 아기가 잔뜩 신날 수 있는 저녁을 보내기도 하고, 힘들면 육아템들에 기대어 요령 부리며 쉬어가는 저녁을 보내기도 해야지. 그리고 다시 또 힘이 생기면 또 관심 있는 주제를 공부할 자리가 없는지 기웃거리며 또 폭풍같은 저녁을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저 아기가 ‘이 정도’만 해주는 것에도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