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상담소]#02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텐 장점이 없어요(나는 소심해요)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입니다. 2015년부터 진행한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털어놓은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합니다.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
#02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텐 장점이 없어요.
“저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텐 장점이 없어요."
작년 3월 학기 초, 장점으로 자기소개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재경이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점이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습니다.
“단점은 잔소리로 듣거나 혼날 때 맨날 들어서 알겠는데…. 장점은 잘 모르겠어요.”
장점에 대해 물으면 머리만 긁적이던 아이들도 단점에 대해서는 와글와글 대답했습니다. 단점만으로 스스로와 상대방을 단정하기도 했지요.
“저는 원래 느려요.”
“저는요, 원래 예전부터 집중을 못했어요.”
“너는 맨날 욕하는 애잖아.”
본인의 장점은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단점에만 매몰된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습니다. 맨날 듣는 잔소리에 주눅 들고 남과 비교하면서 위축되는 우리 아이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줄 수는 없을까요? 이럴 때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 바로 <나는 소심해요>입니다.
그림책 <나는 소심해요>에는 소심함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아이는 자신을 작아지게 하는 이 소심함을 극복하기로 결심합니다.
노래를 크게 불러보면 소심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기타까지 동원해서 열심히 불러보았지만, 1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부끄러움만 밀려옵니다.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좀 나아질까요? 실컷 친구의 말만 들어주고 질문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소심함을 극복하지 못해서 자꾸만 더 의기소침해지던 어느 날, 누군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려줍니다.
“소심함은 병이 아니란다. 오히려 네가 가진 건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세심함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신중함이야.”
아이는 소심함이 자신을 뒷걸음치게 하지만, 또 앞으로 나아가게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심함을 내쫓거나 숨기지 않기로 결심합니다.‘소심함’의 다른 이름은 바로 ‘신중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단점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소심한 아이가 모두 활발한 아이로 변신해야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이들이 배워나가야 할 것은 자신의 단점을 쫓아내거나 억누르는 방법이 아니라 그것을 건강하게 다스릴 줄 아는 방법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단점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서로의 단점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했어요.
“내 마음 속에는 짜증이가 있어. 조금만 피곤해지면 짜증이가 자꾸 올라와서 표정이랑 말투를 날카롭게 만들어놓지. 너의 마음에는 누가 살고 있니? 너를 자꾸 성가시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소개해줄래?”
아이들은 왁자지껄 신나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까칠이, 까먹이, 컴게임, 악폰이… 저마다 다양한 친구들을 소개합니다.
가족 대대로 승부욕이 강한 현우는 ‘이기리’를 꺼내어 보여줍니다. 물건을 새로 사서 포장 뜯는 걸 좋아하는 현정이는 '새롭이'와 살고있다고 고백합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석현이는 ‘느림붜’를 소개했지요.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한 권의 그림책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반 협동 그림책 [교실 속 그림책] 너만 그런 건 아냐(권석현 외 18명, 교육미술관 통로)가 탄생했습니다.
_[교실 속 그림책] 너만 그런 건 아냐(권석현 외 18명, 교육미술관 통로)
“선생님, 예전에는 석현이가 조별활동 할 때마다 늑장 부리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그런데 석현이가 쓴 느림보 부분을 읽어보니까 이제 조금 이해가 되요.”
아이들은 친구가 표현한 글과 그림을 통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단점도 너그럽게 이해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반은 일 년 내내 서로가 가진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다스려나갈 수 있었지요.
어느 누구도 교실에서 한 아이를 ‘느린 애’, ‘욕하는 애’, ‘싸우는 애’로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느린 문제를 다스리고 있는 아이일 뿐 그 아이 자체가 ‘느린 애’는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 모두가 알았으니까요.
일 년이 지난 올해 3월 초, 이제 선배 어린이작가가 만든 그림책을 후배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두 권의 그림책 <너만 그런 건 아냐> 그리고 <나는 소심해요>를 4학년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단점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번엔 이렇게 질문했지요.
“얘들아, 내가 가진 단점을 잘 다스리면 오히려 장점으로 키울 수 있지 않을까? 내 단점을 요리조리 자세히 들여다보고 뒤집어보면, 거기서 장점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단다.”
아이들은 자신의 단점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행동이 느려요. 그러나 나는 꼼꼼해요. 다시 보고 확인하기 때문이에요.”
민수는 선배 어린이작가 석현이가 그린 ‘느림붜’에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행동이 느린 이유를 생각해봤더니 느린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더래요. 꼼꼼하게 다시 확인하는 습관은 분명 장점이니까요.
“나는 ‘만약에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러나 나는 그런 고민 때문에 많은 생각을 해요. 오래 고민하고 생각한 덕에 특별한 것을 생각해요. 생각과 생각이 모이면 특별한 이야기가 돼요.”
걱정이 많은 지윤이는 매사에 오래 고민하지만, 생각을 많이 한 덕에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요.
“나는 산만해요. 그러나 나는 활발해요. 왜냐하면 무슨 일이 있으면 두근거려요.”
마지막으로 시현이의 그림에 입 꼬리가 활짝 올라가 귀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온 몸이 찌릿 찌릿, 마음은 들썩 들썩. 교실에서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우리 시현이의 모습이 그림 속에 그대로 담겨있어서요.
이 그림을 마주한 이후 시현이가 교실에서 까불 까불, 들썩 들썩 할 때 자꾸만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오늘도 시현이의 하루는 얼마나 신나고 두근거릴까’ 싶어서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벅차오르는 아이, 시현이가 가진 것은 ‘산만함’이 아니라 ‘두근거림’입니다. 시현이가 들썩일 때마다 제 마음도 덩달아 물오른 버드나무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봄바람이 자꾸만 가슴을 간지럽히네요.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작가 권석현 외 18명의 그림책을 토대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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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 #02 나는 소심해요] 학습지 첨부합니다. 아이들 수업 목적 이외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주시고 활용시 꼭 출처 표기해주세요.
*[교실 속 그림책] 너만 그런 거 아냐(글 그림 권석현 외 18명, 교육미술관 통로)의 전체 본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전자책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coolbooks.coolschool.co.kr/books/2e97df29-6d91-4b64-b0b2-9d908b6fe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