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상담소]#01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꾸 주눅이 들어요(쫌 이상한 사람들)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입니다. 2015년부터 진행한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이 털어놓은 고민에 그림책으로 답합니다.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
#01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꾸 주눅이 들어요.
“선생님, 저는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아요. 웃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슬퍼도 억지로 웃어요.”
2017년 가을이었습니다. 그림책 창작 동아리 수업으로 한창 글을 쓰던 어느 날, 6학년 현지가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현지가 써온 글을 살펴보니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웃어야 한다.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어도 웃어야 한다. 만약 힘들다고 말하거나 슬픈 얼굴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서 떨어져 나갈 거야.’
이따금 주위를 둘러보면 나만 빼놓고 온 세상이 행복해 보입니다. 나만 우울한 것 같아서 마음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기도 하지요. 이런 날 마음껏 울지 못하고 억지로 웃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슬픔을 꺼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힘든 내색을 하면 남들이 싫어할까봐요.'
'괜히 마음을 드러내면 이상한 아이 취급하니까요.'
슬픔을 환대받지 못한 아이들은 아픔을 꺼내놓지 않고 가슴 속에만 꽁꽁 숨겨둡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른 애들은 다 멀쩡한데 나만 이상한 것 같아. 애들이 이런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루를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나를 바라보는 버거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_[교실 속 그림책] Smile (글 그림 이현지, 교육미술관 통로)
현지는 침대에 누워있으면 커다란 눈동자들에 둘러싸인 기분이 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남들의 시선 때문에 위축된 심정을 사방을 둘러싼 눈동자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현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이불을 끌어당긴 채 웅크린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립니다.
현지의 무거운 고민을 ‘쨍그랑’ 명랑하게 깨트려 줄 그림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 작가 미겔 탕코가 쓰고 그린 ‘쫌 이상한 사람들(글 그림 미겔 탕코, 문학동네)’입니다.
이 그림책에는 쫌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 다리를 크게 벌리고 걷는 사람을 보셨나요? 관객이 없어서 의자가 텅 비어있는데도 ‘즐거우면 그만’이라며 천연덕스럽게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요?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이 그림책에 모여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더니 민주가 이렇게 말합니다.
“엇 선생님, 그럼 저도 쫌 이상한 사람인데요? 왜냐면 저는 나무를 보면 왠지 안고 싶어지거든요!”
민주의 말을 받아서 지연이도 손을 번쩍 듭니다.
“그럼 저도 쫌 이상한 사람이에요. 저는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요!”
몇몇 아이들이 신나게 ‘쫌 이상한’ 자기만의 특징을 꺼내놓기 시작합니다. 샤워할 때 크게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귓볼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아이도 있지요. 한참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데 민철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그러고 보면 우리 반 애들 조금씩 다 이상한 것 같아요!”
아이들이 모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니 이번엔 수환이가 이렇게 말해요.
“그러네, 나만 이상한 게 아니네!”
그림책 한 권을 매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시간, 아이들은 왁자지껄 신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쉽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내 이야기를 말로 꺼내기 쑥스러워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아이들이지요. 그 아이들의 마음에도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얘들아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나만의 쫌 이상한 점’을 써서 교실 우편함에 넣어보면 어떨까? 이 우편함에 쪽지를 써서 넣을 때는 이름을 쓰지 않아도 돼. 3일 뒤에 같이 우편함을 열어서 어떤 이상한 사연들이 모였는지 읽어보자.”
그리곤 칠판 한 쪽 구석에다가 이렇게 써놓았어요.
쉬는 시간이 되자 몇몇 아이들이 교실 우편함에 모여듭니다. 우편함 곁에 놓아둔 종이를 슬며시 가져가서 꼬물꼬물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쓰다말고 질문하는 아이들도 생겨나요.
“선생님, 저는 쫌 많이 이상한데 두 개 써도 되요?”
“물론이지!”
“선생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게 없는데 안 써도 되요?”
“물론이지!”
우편함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언제나 ‘물론이지’입니다. 교실 우편함은 아이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한 창구이므로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아요. 아이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자기 마음을 써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드디어 교실 우편함을 쓴 지 사흘째 된 날입니다. 재철이는 가방을 벗자마자 사물함 위에 올려 둔 우편함을 가지고 나와서 열어보자고 조릅니다. 우편함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저만 가지고 있거든요.
“선생님, 어서 열어봐요.”
“제가 우편함 흔들어봤는데요 쪽지가 엄청 많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두구두구, 개봉 박두!”
아이들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우리 반이 적은 ‘쫌 이상한’ 사연을 기다립니다. 첫 번째 쪽지를 펼쳐보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쫌 이상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기분이 좋으면 아무에게나 인사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크큭 웃기 시작합니다. “나도 그러는데!” 하면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하는 아이도 있지요. 왁자지껄한 와중에 다음 쪽지를 펼쳐보니 이렇게 적혀 있어요.
“나는 바퀴 벌레는 손으로 잡는다.(손은 꼭 닦는다!)”
‘으악’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폭소하기 시작해요.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이 쪽지를 쓴 아이는 빵 터진 우리 반을 보면서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겠지요.
다음 쪽지를 펼쳐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이상한 사람이다. 이유는 친구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무서워서 계속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뭐라고 안 할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뭐라고 안 할까’ 고민하는 건 4학년도 마찬가지입니다. 6학년 때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교실 속 그림책] Smile’을 쓰고 그렸던 현지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현지에게 메시지로 아이의 사연을 전해주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글을 쓴 아이에게 한마디 답장을 해준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어? 간단하게 써주면 전해줄게. 선생님이 해주는 이야기보단 선배이야기가 더욱 와 닿을 수 있잖아.”
4학년 후배가 털어놓은 고민에 어린이작가 현지는 뭐라고 답장을 해주었을까요? 현지의 동의를 얻어 여러분에게도 답장을 공유해드립니다.
“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너 하나로는 그 기준에 모두 맞출 순 없어. 오히려 남들 눈치를 보면서 쭈뼛거리는 것보다는 그냥 너만의 색을 마음껏 도화지에 색칠하고 다녀봐.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들이고! 너는 너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멋진 사람이야. 남의 시선으로 인해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현지가 보내준 메시지를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현지의 내면에 자리잡은 단단한 뿌리가 느껴졌기 때문에요. 수많은 눈동자들의 압박을 이겨내고 이렇게 자기만의 답을 찾은 현지가 대견했습니다.
졸업을 한 현지는 이제 조금 더 무거워진 가방을 등에 메고 더 많은 시선과 평가를 감당하며 일상을 살겠지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또 다시 흔들릴 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라도 현지 안에 있는 단단한 뿌리가 땅 속의 흙을 꽉 붙잡아 줄 겁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 때문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만의 잎을 피워낼거예요.
다음 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현지의 답장을 전해주었습니다. 쪽지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니 우리 반 아이들 모두와 함께 읽었어요.
아이들은 ‘선배 어린이 작가가 우리 반에게 답장을 써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우와, 진짜 현지 선배가 써준 답장이에요?”
“이 쪽지 쓴 친구는 답장도 받고 정말 좋겠다!”
시끌벅적한 와중에 교실을 둘러봅니다.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정지화면처럼 멈추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유심히 바라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눈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알았지? 너는 너 자체만으로도 멋진 사람이야. 그러니까 더 이상 주눅들지 마.'
그림책 한 권을 매개로 마음을 주고받은 이 시간이 아이에게 자그마한 용기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교실 속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작가 이현지의 그림책을 토대로 글을 썼습니다.
그림책 '쫌 이상한 사람들'을 읽고 진행한 <교실 우편함> 수업 활동은 4학년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현지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에 여러분의 사연을 보내주세요. 제 글을 읽으면서 라디오 주파수가 맞추어진 것처럼 꿈틀 꿈틀 반응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편지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서 그림책을 탐독하고, 진심을 담은 답장을 선물드리겠습니다. [그림책 상담소] 사연 편지를 보내실 곳은 okastor@naver.com 입니다.
*[통로 현아샘의 그림책 상담소 #01 쫌 이상한 사람들] 학습지 첨부합니다. 아이들 수업 목적 이외 상업적으로 사용하지 말아주시고 활용시 꼭 출처 표기해주세요.
*[교실 속 그림책] Smile (글 그림 이현지, 교육미술관 통로)의 전체 본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전자책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s://coolbooks.coolschool.co.kr/books/78155449-2382-4885-a4af-458b033ca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