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자치회의 결정에 맡기자’는 말이 불편했던 이유
시작은 점심 시간 운동장 공놀이였다.
운동장에서 특정 학생들-주로 고학년 남학생-이 공놀이, 즉 축구를 하게 되면,
다른 학생들이 운동장을 사용하는 것에 방해나 위협이 되고,
또 그러면서 저학년이나 여학생들의 운동장 놀이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운동장을 ‘독점’하는 형태의 공놀이=축구는 제한하고자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교장선생님께 가서 왜 공놀이는 안되냐고 따졌다고 한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직 운동장 놀이의 규칙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놀이는 안전을 위해서 잠깐동안 보류라고 하셨고,
그 문제가 부장회의에 올라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석님께서 ‘자치회의 결정에 맡겨보자’라고 말씀하셨고,
조만간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자치회의 결정에 ‘그냥’ 맡겨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심지어 우리 학교의 자치회는 4~6학년 학생들이 참여한다.
1~3학년 저학년이 참여하지 못하는 자치회에서 이런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걸까.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치회를 통해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무척 좋아보이고 또 바람직해보인다.
하지만,
자치회의 운영 경험이 적고 학생들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면,
많은 경우, 목소리 크고 발언에 거리낌없는 학생들 위주의 결정이 나기 쉽다.
‘다수결’이 절대적 원칙인 줄 아는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 그래서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솔직히 어른들도)이 참 많다.
사실, 진짜 민주주의적인 결정이 되려면,
크고 잘 들리는 목소리만이 아닌,
작게 머뭇거리면서 말하는 목소리와 지레 포기하고 입을 닫은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소수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야 할텐데,
과연 우리의 자치회는 그럴 수 있을까?..
자치회가 ‘공놀이’에 관해 이야기하고 논의할 때,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소수의 남학생들, 즉, 운동장을 ‘독점’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독점으로 인해 피해를 받거나 혹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모두의 참여권과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자치회는 허울뿐이란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의 껍질을 쓴, 다수의 폭력, 큰 목소리의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되는 시점이다.
ps. 이 글이 학생자치회에 대한 반대로 읽히길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식적인' 자치회를 넘어,
좀더 진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글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