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고 사나 싶은 날.
수업을 마치고 진득하게 앉아서 수업 준비와 업무 처리를 하고, 또지와 함께 놀 자그마한 교구(?)도 만들면서 알찬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는 오후 4시 남짓.
갑자기 또지 이모의 연락이 왔다. 이럴 땐 주로 또지가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이모집에서 놀고 있다는 내용인데, 오늘은 달랐다. 평소 또지를 하원 시켜주시는 친정 엄마께서 급한 일이 생기셨고, 오늘 하원을 대신해줄 또지 이모는 조카가 낮잠에서 깨지 않아 또지 하원이 늦어지고 있다는 연락이었다.
보통 3시 반 이전에 하원 하는 또지, 어린이집 입소 이후 처음으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분명 또지에게는 낯선 경험이었을 터, 서둘러 정리하고 택시를 타고 급하게 왔다.
가면서 친정 엄마와 통화하고 또지 이모와 카톡을 했다.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어서 더 고맙고 미안한 사람은 ‘나’인데, 왜 그들이 나에게 더 미안해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애는 신랑이랑 내가 낳았는데, 키우는 건 나랑 친정엄마가 하고 있다는... 그리고 택시 안에서 드는 단 한 가지 생각.
‘나 지금 왜 이러고 사는 거지?’
그렇게 급하게 어린이집에 들어섰다. 현관에서 눈물이 왈칵할 뻔 했다. 아이들 신발장 있는 신발 한 켤레, 또지의 것이었다.
어린이집 원장님도 선생님도 또지가 잘 놀고 있었다고 하셨지만, 또지는 장남감 붕붕이를 타고 어린이집 거실을 빙빙 돌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같이 남아있는 친구 한명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래서 친구와 즐겁게 웃으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도 이렇게 마음이 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달려와 다리에 매달리는 또지를 보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슴 속을 꽉 채웠다.
그렇게 또지와 함께 하원을 하고, 돋보기 놀이를 하며 민들레꽃을 찾고, 소아과를 다녀오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늦은 하원 시간 때문에 함께하는 저녁시간이 짧아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귀가하여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또지의 식사 거부와 울음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울음으로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결과를 얻더라도 그 과정에서 울음이 아닌 자기만의 표현 방법으로 말할 수 있도록 꾸준히 양육해왔다. 하지만 간혹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그땐 정말 인생극장이 펼쳐진다.
아이의 needs를 채워줄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양육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결국 육아의 일관성을 위해 후자를 선택했고, 또지는 보라는 듯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나도 억지스러운 울음과 보챔은 참기 어려웠지만, 오늘따라 꾹 참아내는 신공을 펼쳤다.
또지는 이따금씩 나를 쳐다보며 울었고, 손짓을 하며 자신에게 오라고 신호를 보냈다. 육아의 경험이 많다면 그 신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울던 또지가 조용해졌고, 울던 그 자세 그대로 잠들었다. 또지가 간난 아이일 때부터 잠들기 전 30분은 항상 소중하게 생각해왔다. 요즘은 ‘엄마, 이야기 들려줘요~!’라고 먼저 말할 정도로, 잠자리 동화를 읽고, 엄마표 이야기를 듣는 우리만의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유대인들에게 ‘베드 타임 스토리’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매우 소중하고 영향력이 있다. 이 시간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긴밀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의 긍정적인 마음과 안정적인 정서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아이의 언어능력이 향상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 또지의 잠자기 전 30분은 실패에 가까웠다. 엄마를 간절히 찾는 아이의 눈빛과 손짓을 육아방식의 고수를 위해 너무 외면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보는 시간이었다.
육아는 익숙해지다가도 다시 서툴러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매일이 같지 않고, 나와 아이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오늘은 조금의 반성과 노력을 다시금 생각할 필요가 있는 하루였지 않나 싶다.
여전히 난 미생이다.
오늘도 나는 실수를 통해 깨닫고, 반성을 통해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