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6부장 #6. 부장을 때려치우기로 했다.
“이제 부장 좀 때려치우려고.”
몇 주 전에 친한 후배 선생님에게 선언했다.
“그래. 할 만큼 했지, 뭐. 그만한다고 해.”
잔에 남은 소주를 들이켜며, 이제 부장 따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벌써 6학년 부장만 4년째. 시작은 얼떨결이었다. 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있었다. 집에 놀러 온 선생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중이었다. 부장님들이 다른 학교로 많이 떠나고 그 자리를 내 또래로 채울 예정이란 말을 들었다. 배정받을 학년도 논의하고, 동태도 살필 겸 내 발로 교장실을 찾아갔다. 나올 때 나는 다음 해 6학년 부장을 하기로 약속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얘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다른 부장은 어떤지 잘 모른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4년 정도 지나니 알겠다. 부장은 일단 힘들고 6 부장은 그들 중에서도 쪼끔 더 힘들다. 이유는 학교에 있어 본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6학년은 기피 학년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매일 신경전 벌이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기 빨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순하고 덜 속 썩인다고 하는데도 그렇다. 여학생들은 얇디얇은 와인 잔 같다. 작은 일에 상처받고, 핀트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금이 가버린다. 몇몇이 무리 지어 다니며 분위기를 흐려 놓으면 정말 난감하다. 남학생들은 흡연, 폭력, 절도 등의 강력한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암튼 6학년을 담임하면 좋을 때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진이 많이 빠진다.
6학년은 수업 내용도 많다.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그 아이들 수준에 맞게 교육과정을 펼치시려면 힘드신 것을 안다. 그런데 확실히 고학년 교과서 내용이 다른 학년에 비해 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교과서가 싹 바뀌어 버렸다. 작년까지 모아둔 자료가 쓸모없어진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6학년 담임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부장만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다른 선생님들 교실을 둘러보고 나서이다.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머리가 띵해졌다. 원래 나는 교실 꾸미는데 재주도 없고, 이것저것 많이 붙이지도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우리 교실과 다른 선생님들의 알록달록 화려한 교실. 아이들 작품을 여기저기 전시해 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였다. 나는 일주일 지나도록 게시판이 텅 비어 있을 때도 많다.
6학년 부장은 매달 성수기다. 다른 학년 부장님들과의 공통 업무 포함, 매달 일할 거리가 있다.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주야장천 일해야 한다. 졸업앨범 업무도 3월부터, 수련활동이나 수학여행도 3월부터, 중간중간 학운위 안건 제출에, 답사에, 학년 자료 수합에 일이 너무너무 많다. 어느 학교나 그렇겠지만 자잘한 일들까지 합치면 내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질 때도 있다.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이런 업무를 다 하면서, 수업 준비도 철저히 하면서, 교실 환경도 예쁘게 꾸밀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가진 에너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제는 부장을 때.려.치.우.기.로.했다. 6학년 부장은 학년 부장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처럼 업무 전담팀 수업 경감을 시행해도 수업 시수를 줄여주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불합리하다. 내가 6학년 부장을 안 하더라도 지금처럼 부당하다고 꼭 의견을 낼 것이다.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지만 말이다.
10월을 절반 보낸 지금, 수련활동을 앞두고 있다. 수련활동 시행과 관련한 여러 통의 가정통신문 발송부터, 답사 실시, 답사 보고서 작성, 활성화 위원회 개최, 학운위 심의, 세부 계획서 작성, 안전교육 자료 제작, 교육청 지원금 신청 공문 발송 등을 하다 보니 수련활동의 ‘수’ 자만 봐도 머리가 어지럽다. 다녀와서 해야 하는 일도 잔뜩이다. 정산 관련 기안도 여러 건 해야 하고, 열린서울교육에 최종 보고도 해야 한다.
이제 곧 중입 배정 원서를 쓴다. 원서 쓰고 나면 11월 학교 행사를 치르고 겨울 방학, 개학하고 나면 곧바로 졸업이다. 아이들 졸업과 동시에 나도 이제 6학년 부장에서 졸업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근데…. 내년에도 계속하고 있을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 때 후배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왜 불길한 생각이 드냐.”
몇 번이나 굳게 다짐했건만, 내년을 확신할 수 없는 현실이 슬프다.
전국에 계신 6학년 부장님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