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개엄마가 되었나] #2. 엄마 생각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와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릴 적 엄마는 늘 좀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는 사람이었다.
나한테 크게 관심도 없는 것 같았고, 동생이랑 싸우면 늘 내 동생 편만 든다 여겼다.
6학년 땐가 수두에 걸려서 병원 가는 길에 엄마한테 기댔는데, 엄마가 별로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아 너무 속상했던 기억도 난다.
사람들이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물어보면 나는 할아버지가 좋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죽는 모녀지간이 아니었는데도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을 찔찔 짰다.
딸을 낳아 키우는 지금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엄마랑 사이가 좋아진 건 대학교 4학년,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이다.
곰팡내 나는 내 자취방에 일주일을 함께 있는 동안, 엄마는 내 방을 뽀송뽀송하게 만드느라 온갖 노력을 다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랑 둘이 데이트하는 맛도 느껴보았다.
지금은 내 어릴 적 엄마를 너무 잘 이해하겠다.
할머니, 할아버지, 시누이들에 시동생까지...
대식구 건사하는 것만 해도 힘든데 직장 일까지 하셨으니 오죽하셨겠나 싶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집에 오면 드센 시어머니(우리 할머니)와 밀린 집안일에 또 시달려야 하니, 딸래미 이뻐할 여유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내가 쪼꼬미만 보면 측은하고 눈물 났던 이유도 ‘엄마’라는 존재 때문이다.
저 조그만 강아지가 태어나서 2개월도 안 돼 엄마랑 떨어졌다니...
푹신한 쿠션 찾아가 몸을 웅크리면 ‘엄마 품이 그립나...’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고 놈을 내 품에 안고 싶어서도 그랬지만, 바라보면 애처로워 나는 집에서 늘 쪼꼬미와 살을 맞대고 있었다.
쪼꼬미가 작아서 내 다리 위에 몸이 올라가고도 남을 때쯤, 쪼꼬미는 내 다리 위에서 잘 잤다.
새끼 때는 잠이 많아서 잘 자나보다 하면서도 나한테서 쌔근쌔근 자는 쪼꼬미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소리에 예민해 놀라서 깨면 우리 딸 어릴 때 해주던 것처럼 토닥토닥 해주었다.
그럼 쪼꼬미는 다시 스르륵 잠들었다.
내 품에서 한참 자다 총총총 걸어 동그란 쿠션 안에 쏙 들어가 버리던 아기 쪼꼬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쪼꼬미는 유독 푹신한 것을 좋아했다.
동그란 쿠션, 우리 집 윌슨(나혼자 산다에 나오는 큰 곰인형), 20년을 나와 함께 한 노란 꽃 이불까지 푹신한 것만 찾아가 엎드렸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또 안쓰러웠다.
엄마 품이 그리운가 보다 했다.
그럼 또 이내 눈물이 났다.
우리 쪼꼬미는 아기라 소변을 잘 못 가렸다.
이불에도 싸놓고, 놀이방 매트 위에도 싸놓고 아주 가관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놈아!” 하면서도, “아 귀찮아.” 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으로 치워주었다.
강아지 키우면 아이 하나 키우는 거랑 같다더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같이 있는 동안 내가 엄마가 되어 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우리 딸 키울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드는 내가 놀라웠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자기를 엄마, 아빠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쪼꼬미의 평생 보호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모’라고 했다.
비록 호칭은 이모지만 엄마 같은 마음으로 쪼꼬미를 대했다.
엄마와 떨어져 사는 저 강아지가 나는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우리 쪼꼬미도 내 마음을 알았을까?
이제 개엄마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사람 때문에 강제로 엄마와 이별한 강아지들에게 사람들은 그 강아지 어미만큼 노력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미 젖 먹고 한창 재롱 부릴 시기에 강제 이별이라니...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다.
그 측은함이 반려동물 결사 반대했던 내 마음을 완전히 바꿔놨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자식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진짜 자식보다 더 귀여울 때도 있는 자식이라는 게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