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살림] #11. 돼지가 있는 교실
교실에서 동물을 기른다면?
6학년 실과에서는 식물 기르기, 동물 기르기 수업이 있습니다. 어떤 학교는 수족관이나 생태연못이 있고, 동물을 기르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도심 속 우리 학교에서는 창문을 열어 두었을 때 날아오는 참새 정도교실에서 동물 기르기 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3학년 때 아이들은 교실에서 배추흰나비와 물방개를 길러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지만 관리가 어려웠지요. 집에서 기르는 구피를 데려와 볼까 싶었지만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작년에 6학년들은 햄스터 길렀대요~ 하며 실과 시간에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동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주말에는 누가 돌보지? 냄새가 나면 어쩌지? 알레르기가 있는 학생이 있다면? 사료값은 누가 대지? 병이 나면?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정해진 기한이 끝나면 누가 돌보지? “내가 해결하고 책임져야지”라고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 앞에서는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동물을 기르는 경험을 통해 동물 기르는 방법을 알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껴 보는 것도 좋겠지만, 제 수업에서는 동물을 길러 본 경험을 나누고, "동물을 기르는 것의 의미"와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을 다루고자 하였습니다. 첫 차시에는 길러 본 동물이 무엇인지 두더지 발표로 물어 보았더니, 사슴벌레, 강아지, 기니피그, 카나리아, 토끼, 햄스터, 거북이, 고양이 등이 있네요.
다음으로는 동물을 분류하는 인터뷰 게임을 합니다. 다양한 목적으로 경제동물을 기르기 때문입니다. 동물의 이름을 나누어 주고, 1~6에 해당하는 동물을 하나씩 찾아오면 당신은 동물왕!
특수동물은 마약탐지견, 경찰견, 실험동물, 안내견 등이 있습니다.
동물 기르기 단원의 포인트 수업은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 <P짱은 내 친구>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올해 밤톨이반 아이들은 제가 담당하는 수업 시간 중에는 아직 영화를 한 번도 보지 않았습니다. 디딤영상으로 사회 역사 관련 영상을 올리고 있지만 수업 시간에 다같이 보는 것은 자제하고 있습니다. 영상은 강력한 힘이 있지만, 내용을 찬찬히 곱씹을 만큼 여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한 편을 모두 본 적이 없습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기다려진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심지어 "학교에서 돼지를 기르는 영화"라니, 아이들은 월요일 실과 시간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물어 보았습니다.
P짱은 내 친구
일본의 쿠로다 야스후미 선생님이 히가시노세 초등학교로 초임 발령을 받고 4학년 아이들과 생명 교육을 위해 돼지를 키우게 되고, 정성껏 기르다가 잡아먹기로 하였는데, 결국은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기르면서 아이들과 선생님이 성찰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도 학교에서 돼지를 기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어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쿠로다 선생님이 <돼지가 있는 교실>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읽어 보면 초임 선생님의 입장과 마음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P짱은 내 친구>는 교대 재학 시절, 국어과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영화였습니다. '반 아이들과 돼지를 길러서 생명교육을 한다', '졸업할 때가 되면, 돼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용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한 6학년 학생들의 치열한 토론 과정이 인상 깊어 수업에서 살펴보았던 텍스트였습니다. 5학년 국어 토론 단원 수업을 할 때 잠깐 살펴본 적이 있었지요. 팽팽하게 토론하고, 승패를 결정하는 모습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수업을 위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심히 보니, 일본의 초등학교와 우리나라 초등학교를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는 2008년에 제작되었고, 쿠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나서 책을 썼다고 하셨으니 일본의 20여 년 전 초등학교 모습이겠군요.
영화는 ☞인디플러그에서 다운을 받습니다. "돼지가 있는 교실"로 검색해도, "P짱은 내 친구"로 검색해도 됩니다. 화질 좋습니다. 2000원 밖에 안 하네요. 가격보다 훨씬 큰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 속으로 빠져들기
영화는 110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선생님이 돼지를 데려와서 기르기 시작함. 2) 돼지를 기르면서 아이들은 문제에 부딪침. 3) 돼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함. 영화를 셋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였습니다.
1)에서는 질문 만들기로 시작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 제목과 책 표지만 보고 질문을 만듭니다."돼지가 왜 교실에 있을까?", "돼지는 어디서 왔을까?", "돼지는 얼마나 자랄까?", "돼지는 얼마일까?" 등 자유롭게 질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봅니다. 15분 정도 영화를 보고 나서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됩니다. "선생님은 왜 돼지를 데려왔을까?", "전학생은 왜 표정이 저럴까?", "P짱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선생님은 왜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했을까", "돼지가 똥을 얼마나 쌀까?"와 같은 영화 내용과 관련된 질문을 떠오르는 대로 던지고, 나름의 답을 달아 보도록 합니다. 무슨 질문이든, 우리가 영화 속 상황에 몰입할 수 있게 돕고 있으니 모두 인정해 줍니다.
학교에, 우리 교실에 동물이 나타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환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생명을 기른다는 것은 곧 묵직한 책임을 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2)를 보기 전, 아이들에게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반에 P짱이 온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를 칠판에 적고 줄줄이 발표로 대답을 해 봅니다.
"매일 같이 놀 거예요.",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다른 반에 방해가 될 것 같습니다.", "똥을 싸면 냄새가 심할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일단 학교의 적당한 공간에 집을 지어 주어야 했고(나무에 못을 박아 우리를 만드는데 목공하는 모습을 우리 반 아이들이 정말 부러워했습니다.), 석달 만에 100kg가 넘게 커져버린 P짱을 먹이는 문제(처음에는 잔반을 모아서 주다가 정기적으로 노인복지시설에서 얻어서 P짱에게 주고, 반 아이들은 이 곳과 교류를 이어 나갑니다.), 비가 오거나 태풍이 불 때 노심초사하고, 갑자기 P짱이 아플 때 약값을 마련하거나(아이들은 폐지를 모아 돈을 마련합니다), 우리 밖을 뛰쳐나가거나(영화에서만 해도 P짱이 계속 탈출하지요), 소리를 내고 학교의 식물을 먹어치워 곤란해지고(토마토를 좋아하는 P짱), 당번을 정해 우리를 치우고 대소변을 청소하는 데서 오는 갈등 등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 하지요.
3)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년이 바뀌면 구성원이 달라지고, 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반면 돼지의 수명은 9~15년이지요. 실제 농장에서는 고기를 얻기 위해 6개월 내에 도축을 합니다만 P짱은 4월에 데려와 학생들과 정이 든 다음에는 이미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기도 지나고, 농장으로 돌려보내려 해도, 동물원으로 보내려 해도, 누구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P짱은 돌보던 학생들이 학교에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 학생들의 의견은 먹어야 한다, 먹지 말아야 한다로 나뉩니다. 우리 반 학생들과도 신호등 토론을 해 봅니다. <P짱을 먹어야 한다> 에 찬성(초록) : 반대(빨강) : 잘 모르겠다(노랑) 로 처음 의견을 표시해 보니 5:15:1이 나왔습니다. 찬반 짝토론을 하여 왼쪽 사람은 찬성, 오른쪽 사람은 반대 입장으로 토론을 합니다. 원래 입장과 상관없이 정해진 입장에서 근거를 들어 토론해야 합니다. 3분간 토론 후, 이제 입장을 바꿉니다. 오른쪽이 찬성, 왼쪽이 반대가 되어서 말입니다. 정반대가 되어서 토론을 하니 아까 말했던 자신의 근거에 대해 반박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P짱을 먹겠다고 할 수 있죠?" "P짱을 먹는 것은 나쁜가요? 경제동물은 우리에게 고기를 주잖아요." "죽이면 안될 것 같아요."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신호등으로 표시를 하였습니다. 결과는? 4:14:3이 되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선생님은 돼지를 정성스럽게 길러서 먹는 과정까지, 생명에 대한 전부를 배우게 하고 싶었지요. 그리고 영화 속 친구는 P짱을 먹어서 몸과 마음에 새기는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그래도 안 돼요."
P짱은 정이 들었으니 먹지 말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생들은 졸업을 하는데 말이지요. 밤톨이들은 "선생님이 맡은 다른 반에 맡겨요.", "학교에서 계속 길러요. 그럼 졸업해도 보러 와서 돌보면 되니까요." 등의 대답을 합니다. "글쎄,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영화 속 아이들과 선생님은 치열하게 고민을 합니다. 내가 맡은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지요."
오늘은 주제일기를 과제로 내어 줍니다. 학생들은 영화 속 토론 장면을 보지 않은 채로 <P짱을 먹어야 한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P짱을 먹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P짱을 기르면서 생기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P짱을 먹는 것은 다른가?>에 대해 선택하여 답을 해야 합니다. '모르겠다'는 선택할 수 없지요.
이제 영화를 끝까지 봅니다. 밤톨이들이 나름의 근거를 들어 생각해 오니, 결말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오늘 글에서는 실제 아이들이 택한 결말은 비밀로 하지요. 우리 반 아이들은 수긍하기도 하고, 수긍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내가 기르기로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어려운 순간을 맞게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기르는 사람들은 동물의 운명에 대해 결정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동물의 성장과 죽음은 피할 수 없어요. 여러분도 반려동물을 대할 때 책임감있는 모습을 갖기를 바랍니다." 하고 수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