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이 뛴다] #7. 우리 모두의 개인적인 공간
'내 교실'이 없이 집무 공간을 공유하고,
몸에 변화가 오자
독립된 공간이 절실해졌다.
임신한 교사를 배려한 교과전담 배치. 내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
다음 해 업무분장, 학년 희망서를 써낼 때 임신 계획이 있거나 임신 중인 선생님은 주로 교과전담 교사를 희망하고, 대부분 희망대로 배치된다. 학급 아이들의 일상에 밀착하여 여러 교과를 가르치는 담임 교사는 업무 강도가 높기도 하고, 생활지도와 상담에 만만치 않은 에너지를 투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최소 3개월이 예정된 출산휴가의 공백,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건강, 병원 방문을 위한 잦은 조퇴, 대체 교사에 대한 학급 학생들의 적응 문제, 하다못해 체육 등 신체활동에 대한 제한, 학생 인솔 시 위험 등 기왕이면 담임은 다른 분에게 맡기게 되는 것도 이해는 된다. (학년초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신 분이나 학교 사정으로 희망과 달리 배치된 임산부 선생님들께는 토닥토닥) 교과전담교사를 원로교사, 퇴임을 앞둔 분, 질병이나 난임 등의 휴직예정교사들이 맡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게는 발령 첫해, 첫 아이를 출산하던 해, 그리고 올해 교과전담교사를 맡을 기회가 있었다.
교과전담교사로서 생활지도에 대한 부담을 덜고 교과 전문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스트레스 완화 요인이 있는 반면, 이동하며 수업을 하는 것은 일정한 스트레스를 준다. 3, 4학년 총 15개 반, 22시간의 과학 수업을 맡고 있는데 수업 시간표를 작성할 때부터 동일한 학년을 하루에-연속해서 수업하도록 계획하고, 덧붙여 층간 이동을 최소화하도록 배치하기 위해 2월에 고심했었던 기억이 난다. 학급 수가 적지 않으므로 과학실을 달별로 돌아가면서 사용을 하고, 수도가 설치된 과학실이 배정되었을 때 화학 단원이 포함되도록 단원을 배치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과학실 사용이 곤란해졌기 때문에, 대면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운반수레(이동식 트롤리/카트)를 5층의 과학실에서 실어서 각 반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 1학기에는 1시간 수업하는 4학년에서 온라인 수업만 하도록 양해를 해주셔서 3학년 일곱 반의 1차시 수업(1차시는 온라인)만 진행하면 되었다. 주 3회(지난 화요일부터 주 2회) 등교를 하는 지금은 3, 4학년 수업이 함께 있는 날이 이틀이라 트롤리가 꽉 찬다. 40분 수업을 하는 대신 쉬는 시간과 중간놀이시간 없이 운영하고 있는 우리 학교는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면 후다닥 짐을 챙겨서 옆반으로 이동하여야 하므로 복도에서는 늘 빠른 걸음으로 다녔다. 빨리 비워드리고, 짐도 챙겨야 하고, 칠판도 (칠판지우개를 통한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해) 내 전용 지우개로 지우고 나오다 보면 복도에 담임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시곤 했다. 다음 수업 학생들은 "과학선생님, 왜 늘 숨이 차요? 오늘은 왜 늦으셨어요?"라고 다정하지만 뜨끔하게 묻는다. 과학실에서만 진행했어도 훨씬 나을텐데. 쉬는 시간 5분씩만 확보해서 운영하면 또 어때서. 그래도 아쉬움은 꾹꾹 눌러 놓고, "헉헉 여러분 미안해요~ 선생님이 몸이 무거워서~ 엘리베이터가 늦어서~" 하고 양해를 구하곤 했다.
시선이 안 닿는 곳에 혼자 있고 싶은 때가 있어
이동하며 수업하는 것보다 사실 더 조심스러운 부분은 바로 공간을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시 2020 초중등 학교급별 교원 배치 기준에 따르면 "초등학교에는 각 학급담당교사 외에 교사의 근무부담과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체육, 음악, 미술, 영어, 기타 교과를 전담하는 교과전담교사를 둘 수 있으며, 그 산정기준은 학교별로 3학년 이상 3학급마다 0.75인 이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올해는 교과전담 교사 6명이 교과교사연구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돌봄겸용교실을 사용했던 작년에 비하면 그래도 내 자리가 정해져 있어 낫다고 할까. 방과 후에 업무를 하거나 상담을 하려면 교사 회의실로, 컴퓨터실로 이리저리 짐을 들고 옮겨 다녀야 했었고. 마지막 아이들이 하교를 하면 그제서야 한숨 돌리고 다시 교실에서 나머지 일을 마감했었다.
업무분장 발표가 나고, 담당할 교과목을 확정한 뒤, 교과실로 와서 가장 처음 하는 일은 바로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일반 교실 절반 크기의 교과실에 책상 8개가 놓여 있다. 동료 선생님들께서는 이동하기 편하고 따뜻한 출입문 근처 자리를 권하셨지만, 난 더위를 타는 편이고, 햇빛도 쬘 겸 창가 근처 가장 안쪽 자리에 앉기로 했다. 안쪽 자리는 선풍기를 두기에도 여유로웠고, 한갓진 곳이라 편안했지만, 자리로 가기까지 두 분의 선생님을 거쳐야 했다.
아이가 커질수록, 장기가 눌리고 자주 화장실에 가게 된다. 사적인 통화가 걸려 올 때도 방해되지 않도록 얼른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그러면 드나들 때 의자를 당겨 앉아 주시니 이래저래 죄송스러웠다.
학교의 복도는 소리가 울리네
임신 24주가 넘으면 임신성 당뇨 검사를 하게 된다. 만일 진단을 받게 된다면, 기상 직후/아침 식후 2시간/점심식후 2시간/저녁식후 2시간 총 4번 혈당치를 측정하고, 식단을 조절하여야 한다. 공복혈당과 식후 혈당이 안정될 수 있도록 식사량뿐만 아니라 식사 순서를 조절하느라 신경이 날카로웠지만, 그조차 태교에 좋지 않을까봐 아기의 건강을 위해서 꾹 참아 넘기곤 했었다.
코로나 19 국면으로 개학이 연기되었을 때, 고위험군에 포함된 임산부라서 재택근무를 했다가, 5월부터는 출근하여 온라인 수업을 했다.
9시 반이 되면 혈당을 재야 하는 시간. 먼저 손을 씻고, 바늘로 찔러 채혈한 다음, 혈당측정기의 시험지에 묻힌다. 당뇨 관리 수첩에 결과를 적고, 채혈침을 제거해서 (안전과 위생을 위해) 휴지에 잘 싸서 버린다. 알콜솜으로 채혈 부위 소독을 하면 끝.
혈당측정기는 시험지를 꽂아 전원이 켜지면 소리가 나고, 몇 초 뒤 결과가 나올 때 수치를 소리내어 알려 준다. 굳이, 수치를 소리로 알려주는데 소리를 끄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얼른 숫자를 확인하고 전원을 끈다. 문제는 매일 해야 하는 이 일을 할 적당한 공간이 가까이에 없다는 것. 2, 4층에는 복도에 공용공간이 설치되어 앉을 수 있지만 우리 층에는 없다. 수첩, 볼펜 등도 놓아두어야 하기 때문에 창틀에 올려놓고 측정을 했었다. 1/3, 2/3 등교를 하게 되자 옆 교실 학생들이 오는 날에는 다른 쪽 창가로 이동했었다. 환기를 위해 교실 문을 열어 두었기 때문에 수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6월 중순부터 우리 학교는 쉬는 시간 없이 5교시를 이어서 수업했기 때문에 공강이 없는 날은 측정하지 못했다. 쉬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기도 했지만 복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서성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요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는 복도에 푹신한 장의자를 두거나, 소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둔다. 위 사진은 작년에 방문했던 송파 책박물관 복도의 모습이다. 복도 자체도 예뻤지만, 학교에 이런 공간이 있다면 참 좋겠다 싶어서 작년에 촬영해 두었다. 복도가 단지 이동하는 곳, 비어 있는 것이 당연한 곳이 아닌 자연스럽게 앉아 있거나 삼삼오오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재개념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 안에서 모둠 활동을 할 때, 이리저리 책상만 옮겨 보며 복작이는 대신, 복도를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의 교실은 얼마나 확장될 수 있을까. 교실에서 나온 아이가 복도에서 한숨 돌리거나, 잠시 학생이나 학부모와 상담을 할 때도 훨씬 마음이 말랑해지지 않을까. 학교에서 근무하는 내게도 더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은 정도를 넘어, 더 편안한 공간을
임신 초기에는 졸음이 온다. 초반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지냈는데, 까무룩하게 잠이 쏟아지는 날이 있다. 배가 뭉치거나 쥐가 날 때도 있다. 잠시 다리 뻗고 앉거나 누워 휴식을 취하면 컨디션이 훨씬 낫다. 난감했다. 딱 20분만 쉬면 좋겠는데. 교과실은 자리가 좁은 편이라 자세도 영 불편하고, 여럿이 있는 곳에서 꿀잠을 청할 만큼 넉살은 좋지 않았다.
지금 학교에는 교사 휴게실이 없다. 특별실도 교실로 쓰는 마당에, 상담실도 없는데, 교사 휴게실은 언감생심.
첫째 출산 후 다른 학교에서 놀이연수를 받았을 때, 몸이 어딘가 안 좋았던가 유축을 해야 했던가 가물가물하지만, 여교사 휴게실을 이용했던 적이 있다. 따뜻한 바닥과 밝은 채광에 잠시였지만 편안했다.
연초에 보건 선생님께 미리 양해를 구했다. 잠시 쉬어야 할 때, 혹시 출산 후에 유축을 하러 올 수도 있는데 보건실 말고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셨다.
보건실에는 4개의 싱글 침대가 있다. 남학생용, 여학생용 2개씩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어서 아늑한 느낌도 있다. 전 학교보다 파티션의 높이가 더 높아서 일어서도 다른 쪽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보건선생님의 "침대마다 커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도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말이에요." 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아차, 내가 참 무뎠구나. 그동안 보건실 침대를 이용해 본 적이 없어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배가 아픈 학생이, 생리통이 심한 학생이 문 열리는 소리에, 옆 침대의 기척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은 유축을 하며 출근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이용하지 않을 시간을 골라 퇴근 직전 보건실 침대 한 켠을 빌어 사용한다. 커튼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점심 시간에 운동장을 거니는 선생님.
복도 창틀에 팔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는 교과 선생님.
전산실에 볼 일이 있어 들어갔을 때 벌떡 일어나시던 남선생님.(당시 여교사 휴게실은 있었지만, 남교사 휴게실이 따로 없었다.)
회의실에 놓인 소파에서 잠시 등을 기대는 선생님.
그분들은 왜 그 시간에 그 곳에 계셨을까.
개인적인 이유로, 건강상 문제가 있어서, 잠깐이라도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임산부 교사가 느낀 불편함은 다른 모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다, 에서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묻고 상상하면서 학교의 공간이 더 편안해지고, 더 아늑해졌으면 좋겠다.
모두의 공간을 넘어서 여럿의 공간, 개인들의 공간이 늘어나는 학교를 꿈꾼다.
'뭘 더 바래' 에서는 계속 제자리걸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