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심장이 뛴다] #1. 두근두근
내년쯤 둘째를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1월 말, 두 개의 심장이 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늦게 알리고 싶었다. 최대한 이전과 같이, 선생님의 일을 하려고 했다.
11월 언젠가 오전
임신을 짐작하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병원에 갈 날을 기다리던 2주 사이. 체육관에서 돌아오는 길.
A는 B에게 뭔가 섭섭함을 느꼈다. A는 내 앞으로 오면서 저 자식을 때려야겠다고 했고, "그래도 때리는 건 안 되지"라는 말을 듣자 B는 소리를 지르며 내 뒤로 숨고, A는 팔을 뻗어 때리려고 했다. 가운데 끼이게 되어 둘을 제지했고, A의 손을 잡았다. A는 억울했던지 벽의 빗물관을 걷어 찼다. "그러지 마!" 라고 하자 달려가 유리문을 발로 찼다. 아이도 흥분했고, 나도 피가 머리 꼭대기로 몰리는 기분이었다. 잠시 교무실에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아 일단 교실로 올라갔다. A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누군가를 칠 것 같아서 옷을 잡고 교실에 올 때까지 놓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화내서 될 것이 아니고, 내가 큰 소리 쳐서 잡힐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는데, 그날따라 진정되지 않았다. 파팟 파팟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음악 시간, 원래 노래를 함께 할 계획이었는데,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국어책을 꺼내어 읽어 주기 바란다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얼굴이 뜨거워져서 복도로 나왔다. 3학년 아이들은 교실에 선생님이 없으면 바로 쉬는 시간이 된다. 심호흡도 해 보고, 손도 주물러 보았지만 숨이 가빠오고 심장 박동이 가라앉지 않는다. 눈물이 핑 돈다. 아이도 제자리에 앉지 않고 교실 뒤쪽에 있다.
화장실에 갔다. A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아주 짧게 설명하고, "어머니, 제가 지금 아이를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교실에 있는데 혹시 교실 밖을 나가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면 어머님께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 때는 학교로 와 주시겠어요? 이렇게 전화드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말씀하셨다.
두근두근 쿵쿵 심장아 진정해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나았을까? 참아야 했을까? 잡지 말 걸 그랬나? 이거 아동학대인가? 어디든 잠시 가버리게 두는 것이 좋았을까? 나는 어머니께 왜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평소 같았어도 이렇게 진정이 안 되었을까? 심장은 왜 이리 빨리 뛰지? 정말 임신일까?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지? 난 왜 이럴까? 교감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눈물은 대체 언제 멈추는 거야?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지?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심호흡을 몇 번 더 하고, 교실에 돌아갔다. 그 뒤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A야, 이제 자리에 앉자, 어머니께 전화 드렸다." 라고 말했더니 A가 자리로 돌아왔던 것 같다. 국어 수업을 시작했고, 울컥울컥하면 칠판을 보거나 책을 보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그리고 A와는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오후에 어머니께 다시 전화를 드렸던 것도 같다. 그 이후 나도 A도 그렇게 흥분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임신을 알았다
임신.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둘째가 왔다.
나이도 있고. 첫째와 터울도 좀 지고. 기다리던 아이였지만,
내가 구상했던 대로 내년이었으면. 여행도 다녀 오고, 대학원 논문도 어느 정도 마무리 짓고, 올해 담임을 맡은 아이들을 보낸 뒤에.
그 때 아이가 온다면 내가 좀 더 준비가 되고, 좀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일도, 태교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임신으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인 변화를 느낀다.
한 번 경험했어도 조심스럽다. 그 때와는 또 다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인지해서 긴장하게 된다.
이렇게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 일어날 때, 무리를 해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면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불편한 감정을 누르고 넘기려는 노력이 오히려 내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맡은 일, 하려고 마음 먹었던 일은 해내고 싶다. 약해지고 싶지는 않다.
무사히 올해 아이들과 끝인사를 하고, 무탈하게 열 달을 채워 아이를 만나고 싶다.
학교에는 임신 소식을 바로 전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임신 소식을 되도록 늦게 알리고 싶었다.
임신 초기라 조심스러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내 컨디션을 유지해서 학급의 일상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던 첫째 때는 종업식 날 알렸던가, 끝까지 비밀로 했던가. 이젠 기억이 잘 나지 않네.
아이들에게는 끝까지 알리지 않을까 하다
결국 2월, 개학식 날 알리게 되었다.
놀라는 아이도 있었고, 덤덤한 표정의 아이도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아기 이야기만 하게 되는 일은 없었고.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 자리로 와서 아기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어하는 아이들은... 몇 없었다.
생각보다 싱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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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심장이 둘,
태교하며 가르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