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들] #3.대답 없는 순간을 견디기
아주 평범한 수업. 칠판에 단원명, 공부할 문제를 쓰는 것으로 나의 수업이 시작된다. 공부할 문제는 핵심 개념을 비워놓거나 초성으로 쓰고, 보통 교과서에 제시된 학습문제를 짧게 적는 편이다. 칠판 판서 등 시각적 단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매 수업마다 작성하고, 학생들에게도 수업 내용을 메모하고 복습하는 생각공책에 적도록 지도하고 있다.
선생님이 학습문제를 적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학생들 : 두 눈을 끔벅끔벅)
생각공책에 같이 적고 공부할 준비를 합니다. 교과서를 읽어 보아도 좋습니다. (학생 1 : 교과서를 펴고 몇 장을 넘겨 본다.) (학생 2 : 교과서를 주섬주섬 꺼낸다.)
오늘 배울 내용은 무엇일까요? 대답이 없다. 질문을 바꾸어 본다. 어떤 것을 보았나요? (...)
칠판에 쓰인 학습문제를 읽어볼까요? (학생들 : 읽기 시작한다.) (학생 3 : 안경을 꺼낸다) (학생 4: 생각공책을 주섬주섬 꺼낸다.)
(잔소리를 오늘은 꾹 누르고) 오늘은 **에 대해 공부해 볼 계획입니다. 먼저 활동 1을 하고, 활동 2를 할 것입니다. (학생 1 : 다음다음 차시까지 하염없이 읽는다.)
다음 장면을 봅시다. 무엇을 발견했나요? (...) (학생 3 : 안경을 닦는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나요? (...) (학생 4 : 칠판에 쓰인 것을 생각공책에 적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해줄 사람이 있나요? (...) (학생들 : 니가 해~) (학생 2: 눈을 감는다)
와글거리다가도 이상하게 조용해져서 초침도 없는 시계에서 똑딱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순간. 아이들을 보다가 시계를 힐끔 보고 다시 갈 곳 없는 시선을 처리해야 하는 교사의 질문이 흩어진다.
눈치작전을 벌이는 시간이 지나고.
질문을 바꾸거나, 수준을 낮추어 보거나, 누군가 발표를 하면 그 뒤부터 쏟아지는 발표들.
자, 이제 활동 2로 넘어갑시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군요. 자자 여기까지.
의도와 속마음
오늘 배울 내용은 무엇일까요?
☞ 오늘 배울 내용이 무엇인지 왜 물어봤을까. 그냥 칠판의 학습 문제를 읽어보라고 할 것을.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매번 쓰는데 따라 쓰거나 교과서도 한 번 안 살펴봐?
무엇을 발견했나요?
☞ 아니!!! 여기 있는데!!! 동그라미로 강조도 되어 있구만!! 선생님이 유도하는 것 같아서 좀 그래. 본 것을 말해 달라고!!! 그게 어렵나? 살펴본 것 맞니?? 짝이랑 방금 전에 얘기했잖아!!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나요?
☞ 너 일기장에도 썼잖아!! 아침에 선생님에게 와서 막 말했었잖아!!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해줄 사람이 있나요?
☞ 서로 말하기를 했잖니 ㅠㅠ 들은 대로 이야기해 주어도 되는데. 내가 꼭 지목해야 되겠니?
☞ 평소에 잘 발표했잖아, 어서 말을 해 보렴.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나.
☞ 이 친구만 계속 말하고 있네. 다른 아이들은? 어느새 듣지도 않는 것 같고.
☞ 이렇게 입을 닫고 있다니, 뽑기로 해야겠다. 아니면 모두발표?
자, 이제 활동 2로 넘어갑시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군요. 자자 여기까지.
☞ 아니 이렇게 잘 말할 거면서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린 거니?ㅠㅠ
☞ 아까 나온 말인데. 친구 발표는 듣고 있는 건가?
☞ 혹시 참여점수 때문에 그러는 거니? (참여점수 = 급식 순서 및 모둠 보상) 경쟁적으로 손 드느라 질이 떨어지는 것 같네.
티키타카, 환상 속의 그대
주고 받으면서 질문이 질문을 만들고 질문에 서로 답하는 아름다운 광경은 나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잘 된 수업'에 대한 나의 강박일까.
학생들이 학습 목표를 달성하고, 수업 과정을 통해 "개념"을 형성하고 "숙달"하며 적어도 "흥미와 관심"을 가지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꼭 "적극적으로 말로 표현하기"라는 특정한 행동으로 확인하려는 나의 오해 혹은 게으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일단은 수업에서의 "발표" 자체를 상대화할 필요도 있고, "발표 방식"을 다양하게 할 필요도 있다. 발표에 대해 과하게 기대하고,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수업이 추구하는 바와 어긋날 수 있고, 발표가 곧 학생들의 반응-학습의 결과를 나타내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올해 밤톨이반 학생들은 발표하고 답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아이들이 여럿 있다.
"실패들"을 쓰려고 마음 먹었던 계기가 바로 수업하면서 "대답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과거 담임을 했던 반 아이들은 발표력이 좋았고 점점 더 좋아져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수업 나눔을 할 때 pick me pick me 이거슨자존심 영어전담 선생님의 선택을 받은 적은 있지만 다른 교과전담 선생님들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느끼셨는지 늘 다른 반과 공개수업을 하셨는데. 우리 반이 지저분해서 그랬는지도 그래서 올해의 썰렁한 분위기는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질문이 있는 수업 관련 연수에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바로바로 답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교사의 욕심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특히 학생들은 답을 알고 있더라도 외향적인 학생은 2초만에 답을 하지만 내향적인 학생들은 7초가 걸린다고. 그래서 선생님은 최소 7초는 기다려야 한다고.
7초. 알고 있지만 기다리기에는 입이 마르는 꽤 긴 시간이다. 라디오에서 7초 정적은 방송사고 ㅠㅠ
딱 맞아 떨어지고 재치있는 답이 쏙쏙 튀어나오는 상황은 어쩌면 외향적이고 빠르며 선지식이 많은 학생들과만 수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향적인 학생은 답할 기회를 잃고 선생님의 실망한 표정에 속상해하며 입을 굳게 닫을지도.
그래서 이렇게
학생들의 공식적 발화를 높이기 위해 '수준을 조정한다. 격려한다. 시간을 준다.' 세 가지를 되새겨 본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학생들의 발표가 기록될 수 있도록 한다. 실명제가 효과적이나 이름 두어 글자 더 적는 것이 은근히 품이 든다.
1. 학습자료를 확인하기 전 메모하도록 안내하기, 선생님의 메모 보여 주기
2. 틀려도 괜찮아 - 보완하고 연결짓기
3. 친구의 답에 꼬리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