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제국 운영법] 1. 편지를 쓰자.
대부분의 교사들은 자신의 학급을 운영한다. 진영제국 운영법은 본인의 학급운영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학급운영법은 본 교실에서는 효과가 있던 것들이다. |
#0. prologue
교대를 졸업하며 교사가 되고 꼭 생각했던 것이 있다.
“하루에 한명씩 꼭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학생들 한명한명과 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교사가 되고 나니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몇 년간을 일기를 죽어라고 팠다. 그런데 일기는 몇몇 학생들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다. 일기를 안써오면 벌칙을 주고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다.
그러다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왜 일기를 쓰게 했는지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었다. 한명한명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하는 시간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편지를 보내는 건 어떨까? 라고 생각해 봤다.
#1. 편지, 그 설레임
어릴 때는 편지를 다른 지역의 친구들과 많이 주고받았다. 편지를 주고받다 보면 설레임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편지지를 사용할까에 대한 것이다. 좋아하던 친구에게 쓸 편지지, 선생님께 쓸 편지지 등 여러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두고 한참 고민을 하기도 했다. 받는 사람이야 별 의미가 없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당시 편지를 쓰는 친구들은 꽤 진지했다.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써야지 했던 편지지와 편지봉투는 끝내 폐휴지로;;;;)
두 번째는 편지를 쓰는 순간이다. 무슨 말을 쓸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편지란 것은 편지봉투를 밀봉하는 순간 끝이다. 혹시라도 내가 오글거리는 말이나 오해를 부르는 말을 쓰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 순간 답장은 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우체통에 넣는 순간이다. 우체통에 넣는 순간 편지는 내 손을 떠난다. 그리고 언제 도착할지 언제 읽을지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2. 편지를 이용하자.
고등학교때인가 대학교때인가 TV를 봤는데 제주도의 어느 중학교 선생님은 반을 맡으면 학년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편지를 쓴다는 뉴스를 봤다.(그 뒤에 나온 다른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1년 동안 초상화를 한명씩 그려준다는 것도 있었다.) 그 뉴스를 보면서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정 이후였다. 발령초기에 겪었던 일화가 발화점이 되었고(http://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KimJinyoung&wr_id=25 참고) 아마도 1정 때 어느 강사님이 편지 이야기를 하셨던 듯하다. 아무튼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학생들과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내 의도를 다른 사람들과의 간섭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의 그 감정들. 편지를 보낼 때의 설레임과 두려움. 편지를 받을 때 편지봉투를 뜯기 전의 그 두근두근함도 덤으로 알려주고 싶었다. 지금의 카톡이나 문자, 이메일은 너무 인스턴트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쉽게 끓으면 쉽게 식는 감도 없지 않기에.)
#3. 학급운영 시 편지의 장점
딱히 편지의 장점을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지만 6여년을 쓰다보니 다음과 같은 장점들을 찾았다.
첫 번째, 학생 개개인에 대해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학생에게 편지를 한 장을 쓰는 일은 사실 쉽지 않다.(학년말종합의견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공감은 될 거라 생각한다.) 나같은 경우는 내가 학생을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나? 라는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학생 한명에게 편지를 처음 써줄 때는 한페이지 써주는 데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는 그 다음부터 학생들을 보면 은근히 많은 관찰을 하게 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는다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건 꽤 큰 경험을 시켜준다고 생각하는데 현재 우편함은 사실 편지를 받는다기 보다는 각종 고지서나 광고전단지를 받는 곳이 되어 버렸다. 사실 대부분의 고지서들도 이메일로 받는 시대니 광고전단지들이 우편함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 우편함에 편지가 들어가 있다면 학생들에게 큰 경험이 될 것이라고 봤다.
세 번째, 학생들이 편지 쓰는 법을 익히게 된다. 요즘은 편지 쓰는 법을 단순히 교과서로만 배운다. 혹 편지를 쓰더라도 우편으로 주고받는 경우는 드물다. 편지를 받은 학생들 중 몇 명은 답장을 보낸다.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사실 고려해야 할 점들이 꽤 많이 있다. 편지지와 편지봉투를 고르는 것. 답장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편지를 읽어봐야 하며, 편지봉투를 밀봉해야 한다.(의외로 이 밀봉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자칫하면 알맹이만 없는 봉투를 받을 수도 있다.)
네 번째, 학부모가 엄청 감동한다. 나는 그냥 편지 하나를 보냈을 뿐인데 학부모에게는 편지도 보내주시는 선생님이 된다. 그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학생에게 관심이 높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교원평가의 점수를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는데 교원평가의 주저리는 신경 쓰는 편이다. 편지를 집으로 보내준 이후로는 주저리가 나쁘게 쓰여진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말은 다시 이야기하면 편지를 보냈을 때 학생도 학생이지만 학부모가 좋아하는 부수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4. 어떻게 써야 할까?
편지지 한 페이지를 그냥 채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경험을 해보니 나름의 틀이 생겼다.
첫 번째. 편지의 기본 형식을 따른다. 항상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매뉴얼을 따르면 쉽다. 익숙해지고 나만의 노하우가 생기기 전까지는 항상 기본을 따르면 편하다. 편지의 기본형식은 <편지 받는 사람을 부르는 말, 계절 인사나 안부 인사, 하고 싶은 말, 끝 인사, 편지를 쓴 날짜와 보내는 사람, 추신> 이 형식이다. 2학년2학기 국어-나에서 편지를 쓰는 방법이 나온다.(사실 너무 빠르게 나온다는 감이 있고 현실에서는 기념일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도 잘 쓰지 않는 편지인데...) 이 틀만 유지해도 좋은 편지를 쓸 수 있다.
두 번째. 하루에 편지를 쓸 분량을 정한다. 예전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편지를 써주는데 시간이 얼마 없었다. 30명 정도를 3,4일 정도 만에 쓰려니 죽을 맛이었다. 오래 앉아 있어서 몸도 힘들고, 오래 써서 팔도 아프고, 학생들에게 쓸 말을 생각하니 머리도 아팠다. 그래서 그 후 부터는 하루에 다섯 명 정도씩 써주는 편이다. 사람으로 분량을 정해도 좋고 시간도 좋다. 견딜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세 번째. 쓰기 전 학생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다. 편지를 써줄 대상에 대해 장단점, 해줄 말 등을 충분히 생각한 후 글을 쓴다. 편지의 기본 형식 중 핵심은 <하고 싶은 말>인데 이 안에 학생 개개인에 대한 장단점, 교사로서 원하는 점 등 두세문단으로 구성한다면 편지를 쓰는 것은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평소 기록을 많이 해놓았다면 학생에게 편지를 써주는데 도움이 된다.(http://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KimYeonmin&wr_id=46 참고)기록을 평소에 많이 하지 않았다면 아이의 사진을 찾아서 모니터에 띄워놓고 편지를 쓴다. 혹은 학급요록을 펼치고 편지를 써본다. 그러면 하고싶은 말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나는 보통 학생의 장점이나 고마운 점으로 시작하여 조금 더 발전했으면 하는 점으로 하고싶은 말을 마무리하는 편이다.
네 번째. 편지지를 너무 큰 걸 쓰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중요하다. 편지지를 큰 것을 고르면 편지를 쓰는 순간 먹먹해 지게 될 것이다. 차라리 작은 편지지를 사서 두어장 꽉 채우는 것이 큰 편지지 한 장을 반만 채우는 것보다 낫다.(작은 편지지 한 장을 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추천하는 편지지는 공책 두어권 정도 두께의 편지지만 있는 것이 있다. 보통 학교 앞 문구점에 가면 구석에 있는 편지지인데 각 페이지마다 무늬와 모양이 달라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줘도 부담이 없다.
#5. 편지 보낼 때 고려할 것.
혹시 일기검사를 하고 학생들에게 준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자신의 일기를 남이 함부로 보는 것은 싫어하지만 교사의 댓글은 공유한다. 이것은 교사가 자신에게 어떠한 관심을 가졌고 다른 학생에게는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그래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같은 문구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인사말, 꼬리말 이런 것들을 되도록 같은 문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사용한다. 혹은 정말 짧게 써도 괜찮다.
두 번째. 같은 편지지보다는 다양한 편지지를 쓴다. 때문에 편지지+편지봉투 세트보다는 편지지가 묶음으로 있는 것을 더 추천한다. 혹 편지지를 출력해서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편지지만 있는 것을 사용할 경우 편지봉투는 규격봉투를 사용해도 좋고 아니면 편지봉투만 사서 사용하면 된다.(편지봉투들만 따로 팔기도 한다.)
세 번째. 비용이다. 사소한 금액일지 모르겠지만 여러장을 보내면서 조금 신경쓰면 싸게 보낼 수 있는데 못보내면 기분이 찝찝하게 된다. 편지를 보낼 때 우편비용은(옛날 같으면 우표값) 규격봉투, 무게, 우편번호에 다라 달라진다. 규격봉투를 사용하고 편지지 한 장이 들어있고 우편번호까지 적었다면 편지 한 통 당 300원 정도가 들어간다.
그리고 우편번호를 미기재하거나 새우편번호를 사용하지 않으면 규격외우편물로 취급되어 한 통 당 390원이 적용된다.
(전에 우편번호를 적지 않아서 390원을 적용 받은 적이 있다.)
네 번째. 꼭 편지를 집으로 보내줄 필요는 없다. 일기 사이에 껴줘도 좋고 가방에 몰래 넣어줘도 좋다.혹은 꼭 편지지가 아닌 일기에 써주어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편지가 아닌 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교사가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해주면 된다. 그림을 잘그리면 그림으로, 음악을 잘하면 음악으로, 마술을 잘한다면 마술로 전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재능이 없었고 내가 편지에 대한 추억들이 있어서 편지를 사용한 것일 뿐이다.일 년에 3,4회 정도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줬는데 집에 보내는 건 한 번 정도만 해봤다. 다른 때는 가방에 넣어주기도 하고 일기에 써주기도 했다.
다섯 번째. 가능하면 손글씨를 쓰길 권한다. 사실 손글씨로 반 아이들에게 다 써주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출력해서 주는 것보다 손글씨로 써서 보내줄 경우 아이들의 만족감은 정말 크다.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되도록 장점 위주로 하며 단점이 아니라 교사가 원하는 점을 써주길 권한다. 예전에 아이가 편지를 받고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와 이번에는 나쁜 말 없네.”
#6. Epilogue
올해도 편지를 써줬다. 원래는 여름 방학 때 보내주려고 했는데 바쁜 일들이 많아서 쉽지 않았고 개학하면서부터 틈날 때 계속 썼다. 쓰면서 아이들과 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경을 많이 못써준 것에 대해 미안하기도 했다.
만약 교사로서 슬럼프가 오기 시작한다면 한번 해보길 권한다. 학생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매일 1시간씩 일주일만 투자한다면 반학생 전부에게 써줄 수 있다.
#ps
편지를 쓰고 편지봉투를 밀봉하고 편지를 보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시간, 노력, 돈이 든다. 그러다 보면 보상(아이들의 편지)을 바라게 되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답장을 집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못쓰는 아이들이 제일 많다.) 하지만 답장은 오기 마련이다. 방학 때 보내면 개학하고 나서 아이들이 편지를 주섬주섬 가져오며
“선생님 편지를 어떻게 부치는지 몰라서 못보냈어요”라고 하거나 일기에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