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세이]아버지는 이해하시겠지.
1.
"선생님, 술 먹었어요?"
들켰다. 들킬 것 같더라니.
"응. 어제 막걸리 먹었어. 냄새나?"
"네, 술 냄새나요."
미안하다. 어제 친구랑 막걸리 한 병만 먹기로 하고 만났는데, 유명하다는 전주 전집에 줄 서서 들어갔더니 포슬포슬하고 따끈따끈한 전 때문에 도무지 절제를 못했다. 마음 다 내보이고 어린 애처럼 굴어도 되는 오랜 친구를 만나니, 마음도 긴장도 사르르 녹아서,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막걸리 5병 나눠 먹고 신나서 춤추다 잤다.
"선생님도 술 먹어요?"
"응, 먹지. 유진이 어머니도 술 드실 거 아냐."
"우리 엄만 안 먹어요."
"아.. 아빠는?"
"아빠는 먹어요."
다행이다. 아빠를 공략하자.
"아빠 드시는 것처럼 선생님도 친구 만나면 가~끔 먹어요."
유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왠지 덧붙여야 할 것 같아 "한 달에 한 번."이라고 했다. 사실은 일주일에 두 번인데. 대화를 나누고 보니 학부모상담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애기들이 내가 학교에서 한 말을 다 부모님께 말씀드린다고. 어찌나 발가벗겨진 기분이던지.
"유진아, 선생님 술 냄새 난 거 부모님테 비밀로 해주라."
"왜요?"
"부끄러워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유진이는 내가 비밀로 해달라고 한 것까지 부모님께 말할 것 같다. 퇴근하고 먹은 건데, 출근도 하고 수업에 지장도 없었으니 부모님도 이해하시겠지. 적어도 음주인인 유진이 아버지는 이해하시겠지.
2.
학급토의를 했다. 주제는 '선생님한테 일러야 하는 일, 이르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은수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누가 저 때리고 지나가도 신경 안 써요. 그냥 잊어요."
평소에 정서적으로도 건강하고 교우관계도 좋은 아이였고, 진심으로 신경을 안 쓴다는 말이었다.
"은수, 엄청 쿨하네. 그래도 아프거나 일부러 친구가 때리는 거면 사과를 받긴 해야지."
"네, 근데 저는 신경 안써요."
다른 아이들도 웃으며 "은수 진짜 쿨해!"했다. 은수가 덧붙였다.
"누구나 화나면 때리고 싶잖아요. 그래서 저는 때려도 신경 안 쓰는 거죠."
이 무슨,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까지 내어주는 성인의 마인드인가. 갑자기 은수가 숭고해보였다.
"은수, 거의 부처님인데?"
아이들이 꺄르르꺄르르 웃었다. 은수는 멋쩍어했다.
화난다고 해서 남을 때리는 건 잘못이고 그렇게 하면 안되니까 꼭 교육 받아야하는 건 은수를 포함하여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화났을 때 누군가를 때리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해서 신경 안 쓰고 넘어간다고 한 게, '1학년인데 안에 부처가 들어있구나.' 싶었다. 내가 한 수 배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