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와 꼰대사이
#0. 화성에서 온 선배 , 금성에서 온 후배
오늘의 주제는 지금의 저와 10년전의 제 이야기입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교사로 시작하고부터 10년가까이동안 꼭 누군가와는
다양한 이유로 각을 세워야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제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적어도 선배 선생님 중 한명은 제가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작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아무리 들어도 그것에 대한 동의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들은 제가 겸손하지 않음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했었고, 그 반발로 저는 더 열심히 학교에서 생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BK라는 벼가 익어서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은 한참 후 너무나도 큰 문제가 터지고 나서였습니다. 그때가 되서야 '선배교사가 했던 이야기가 이것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30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엄청 많아 보이네요^^;;)
어느덧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에서 선배교사들보다 후배들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그래도 그것때문에 꼰대가 될까봐 조심하고 있는데
가끔씩 주변에서 제가 예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큰마음 먹고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제 이야기를 듣는 표정에서
옛날 제가 선배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선배에게 비추었던 표정이 보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꼰대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선배가 필요한 시기는 따로 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선배가 필요한시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교실은 각각의 세상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내가 가진 능력과 노력으로 우리반 학생들과 1년을 함께 보냅니다.
여기에 다른 선배들이 들어올 여지는 생각보다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회식때 또는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함께 고민을 나누지 않고
각자 신변잡기의 이야기로 채워가는 것은 이런이유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선배가 필요한 시기는 있습니다.
그것은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더닝크루거효과는 한마디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으므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나무위키 더닝크루거 효과)
위의 표의 빨간선은 Confidence 즉 자신감입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말처럼 특정분야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내가 잘 못해도 잘하는 것처럼 생각이 되고 '나는 괜찮은 교사이지.'라고 자부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외부의 조언은 잘 들리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이기보다
'나는 잘하는데 저 사람이 나에게 왜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는거지?'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나면 자신감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집니다.
그 다음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전문가가 되어가면서 자신감을 점점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갈 때는 '아프다.'라고 인식할 때 입니다.
그 기준이 어느정도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 혼자서는 그것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자신감의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신감이 어느정도 아래로 떨어져야만 다른 사람의 조언을 귀기울이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그래프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는 두번의 위기를 겪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와 좌절을 경험할 때입니다.
처음은 나를 봐주는 사람이 많고, 무엇이든 용서가 됩니다.
하지만 좌절을 경험한 다음의 상황은 다릅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럽고, 내가 그동안 잘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면서
자책을 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로서 겸손해지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기도 합니다.
나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면서
주변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파란색 영역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1.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듣거나 2. 자기 능력개발을 위해 노력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3. 그냥 버팁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하루 하루 경험치를 쌓아가면서 극복해가며 전문가가 됩니다.
선배들을 보면 여유가 넘쳐보이는 것은 이런 짬밥이 허투로 들어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선배와 꼰대사이
선배가 후배에게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후배가 그것에 대해 귀담아 듣지 못한다면
저는 그 원인이 두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선배가 파란색을 벗어나지 못해서
- 선배의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후배에게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내 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자존감이 낮다면 자존심이 반대로 무척 세집니다.
내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에서는 선배는 내가 선배임을 강조하게 됩니다.
내가 나를 내세우는 이유는 아무도 나를 내세워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배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보다 높음을 강조하게 됩니다.
우리가 속된말로 흔히 말하는 꼰대는 이런 상황을 말합니다.
2. 나 또한 그 후배와 같은 삶을 살았음을 몰라서
- 제 예전을 돌이켜보아도 '너를 위해 하는 이야기야,'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옛날의 저는 말로는 알겠습니다.라고 했지만
한번도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뒤였습니다.
내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그 후배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내가 겪은 문제들을 겪게 될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전문성을 쌓게 될 때까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나도 이런 뻣뻣한 허리가 숙여질때까지는 좀 건방진 후배였을 것입니다.
앞에 있는 후배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테지요.
#4. 실패할 것이 뻔한 길이라도 끝까지 가봐야 의미가 생긴다
남의 앞길을 막는 꼰대가 될것인가
아니면 옆에서 길을 비춰줄 수 있는 선배가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어짜피 내 앞의 후배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100%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안좋은 이야기가 반복되면 그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겠지요.
그리고 내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이 후배는 나름의 시련을 겪고 나서야
성숙한 선배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선배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패할 것이 뻔한 길이니 가지마. '라고 이야기해서
상대방이 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방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짜 선배가 되고 싶다면
그 후배가 실패할 것이 뻔한 길이라도 끝까지 완주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그 실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알게 해 주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성공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무언가를 조언해주고 싶다면
내 조언을 들을 것인가 아니면 듣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있는 권리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아닌 후배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말 하는 대로 지켜야해'라는 권위적 마인드로 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한다.'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후배의 삶을 살아 줄 수는 없고 내 말대로 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줄 수 없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후배에게 좋은 선택지 하나를 보여주는 것에 충분합니다.
제가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10년 전의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너는 정말 잘하고 있으니 마음대로 해봐. 정말 어려우면 일단 해보고 안되는 점을 이야기해주면 그것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