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쳐짐이 불안한 B선생님에게
#0.
B선생님은 경력이 꽤 오래된 선생님입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학교는 5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듯 매년 새로운 무언가가 학교로 들어옵니다.
한때는 정말 앞서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면 교실에 써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매년 새로운 무언가가 또 교실로 들어오면서 지쳐간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조금 어영부영 있다보니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이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어보고, 그것을 알려주면서 존재가치가 있는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고, 오히려 내가 주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새로운 변화로 인해 B선생님은 조금씩 내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B선생님은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내 주위의 교사들 중 몇 명은 교감,발령을 받기 일보 직전이고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도 상당수가 승진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분들은 항상 B선생님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라도 점수 차곡차곡 모아서 빨리 승진해야지. 조금 더 늦으면 정말 늦는거야.'
B선생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 한길만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생각입니다.
그런데 내 고민은 왠지 부질없게 느껴지고, 어느샌가 뒤쳐져 있는 내 자신에게 불안함을 느낍니다.
이 불안함으로 인해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너무 큽니다.
#1.
이 이야기는 솔직히 제가 하고 있는 고민과도 닿아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노력에 비해서 성과가 무척 좋은 편입니다.
정점까지는 아니었지만 남부럽지 않을 상도 받아본 적이 있고
블로그와 좋은 팀을 만나면서 제 이름으로 된 책도 쓰고, 원격연수 촬영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주변의 사람들 중 몇몇은 제가 무척이나 앞서있는 교사라며 엄지손가락을 펴주곤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저는 제 능력 이상의 성과로 인해 이 성과 이상의 결과를 얻기 어려움을 깨닫고 슬럼프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저만치 앞에서 KTX를 타고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뒤쳐진 다는 것에 대해 불안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제게 그 불안함은 무척이나 생경했고,
그때 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눈과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다시 두 다리를 펴고 일어서기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2. '불안한 교사'는 이상한가?
앞의 B선생님과 제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불안함입니다.
불안함은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큰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불안함을 느꼈을 때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저 혼자서 노력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불안함을 느끼는 제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속된 말로 '쪽팔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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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특정한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두려운 감정. 자기에게 닥칠 위험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미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고 있어 자기 안전이 깨어질 것이라는 두려운 감정을 뜻한다.
(두산백과 -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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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에 대한 정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내리고 있어 정확한 정의를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많은 심리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미래' '불확실' 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므로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의 결과는 1+1=2인 것처럼 100%의 확률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어떤 일에 대한 기대값이 못미칠 것에 대해 불안해합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높은 곳에 있을 때 내가 떨어져서 안전하지 못할 것에 불안해하고
수학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수학문제를 해결하려고 할때마다 내가 해결한 답이 실제와 다름에 불안해하며
무대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평소에는 말을 잘하다가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청중의 반응이 이상할 것에 불안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느끼게 되는 감정이고
불안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흔히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감추고 회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안함을 표현하는 것이 불안함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보다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3. 우리는 언제 불안한가?
많은 사람들은 불안함의 원인을 '실패'와 '좌절'에서 찾습니다.
나의 실패한 경험으로 인해 받은 억압에 대한 공포가 같은 상황에 놓일 때마다 나를 불안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 경우를 보아도, 높은 곳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고소공포증이 생겼고,
초등학교 반장을 할 때 학급방송에서 NG를 30번낸 이후부터 몇백명이 앞에 있어도 안떨리는데
카메라만 보면 울렁거리면서 아무 생각이 잘 안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하려면 그 전에 먼저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전의 결과에 대해 확신한다면 우리는 성공에 대한 '기대'를 하게 될 것이고
도전의 결과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불확실합니다.
무언가에 대해 도전할 때 100%기대하는 경우와, 100% 불안함을 느끼는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대와 불안함은 따로 떨어져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험하고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축구에 관심이 없는 B선생님은 호날두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패배할 것에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로또를 사본적이 없는 B선생님은 로또 1등이 될 것을 기대하지도, 꽝이 될것에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B선생님이 뒤쳐짐이 두려운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학교에서 교사로서 열심히 도전해왔기 때문입니다.
#4. 뒤쳐짐이란 있는가?
앞에서 말한 내용으로 볼 때 뒤쳐짐에 대한 불안은 앞선다는 기대와 닿아있습니다.
앞서고 뒤쳐진다는 것은 하나의 말을 전제합니다.
그것은 모두가 100m 경주와 같이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미래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우리에게 다양한 길이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인식하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내가 결정한 길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존중하면 앞선다 뒤쳐진다는 말 자체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뒤쳐짐이 불안한 B선생님에게
지금 B선생님에게 필요한 말은 다양한 길에 대한 조언이 아닙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변의 조언에 그냥 휩쓸려가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 또 위험합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길을 기웃거려서 따라간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겪지 않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간다는 것이고 그 길은 내가 모르는 길이므로 불확실함이 더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말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게 되는 것은 내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걸었던 길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나 자신을 믿고 내가 걸었던 길을 더욱 갈고 닦는 것'입니다.
어중간한 유행에 흔들리며 내 스타일을 잃어버리기 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내 스타일을 더욱 갈고 닦아서 나를 믿음으로써 불안함을 딛고 일어서고,
그럼으로써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된 후 그 여유로운 공간에 새로운 것을 조금씩 채워가면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뒤쳐짐이 불안한 B선생님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뒤쳐짐에 대한 불안함이 크다는 것 자체로 선생님은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 교사입니다.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은 교사는 아무것도 도전해보지 않은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을 스스로 더 빛나게 만들 수 있는 B선생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