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라피15화] 픽사가 악당을 다루는 방식
픽사 영화는 웬만해선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토이스토리>부터 시작해 가장 최근작인 <인크레더블2>까지! 픽사 작품 내에서 졸작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픽사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온 한 관객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였는데, 바로 픽사가 악당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픽사는 여러 작품 속에서 비교적 일관적인 관점으로 악당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픽사는 영화 속 악당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걸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네 편의 영화 속 악당을 살펴보려 합니다.
<업> ‘찰스 먼츠’ |
<코코> ‘델라크루즈’ |
<인크레더블> '신드롬' |
<토이스토리3> ‘랏소’ |
죽는 악당 : <업> '찰스 먼츠', <코코> '델라크루즈', <인크레더블> '신드롬'
죽지 않는 악당 : <토이스토리3> '랏소'
먼저, <업>의 ‘찰스 먼츠’와 <코코>의 ‘델라크루즈’를 살펴보겠습니다.
칼과 미구엘은 꿈을 이루기 위해 모험을 시도하고, 그 여정에서 그토록 동경해왔던 ‘찰스 먼츠’와 ‘델라크루즈’를 각각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가 생각해왔던 모습과 매우 달랐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었는데, 다시 말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꿈을 이루어 온 ‘일그러진 영웅’이었습니다. 그래서 칼은 찰스 먼츠와, 그리고 미구엘은 델라크루즈와 각각 대결하게 되고, 픽사는 이 두 악당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여 버립니다. 도대체 왜 이 악당을 죽는 것으로 묘사한 것일까요?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고 배워왔습니다. 성공의 축배는 너무나 달콤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승자는 모든 걸 가져야 하고, 패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게 됩니다. 패자는 독기를 품고 성공만을 간절히 염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며 스스로를 기만합니다. 픽사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음으로 <인크레더블>의 ‘신드롬’, <토이스토리3>의 ‘랏소’를 살펴보겠습니다.
‘신드롬’과 ‘랏소’가 악당이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신드롬'은 처음에 인크레더블의 광팬으로 등장합니다. 인크레더블처럼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인크레디 보이’라고 칭하지만, 인크레더블로부터 거절당합니다. 그로인해 신드롬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고, 독기를 품으며 만든 전투 로봇은 영웅들의 초능력을 능가합니다.
아이들과 <인크레더블>을 함께 본 후 마음이 가는 인물 고를 때, 신드롬을 고른 아이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절치부심하여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해 보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합니다.
수업 중 아이들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독은 신드롬은 왜 죽는 것으로 묘사했을까요?”
그러자, 아이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능력을 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걸 나쁜 곳에 사용했어요.”
<토이스토리3>의 ‘랏소’ 또한 <인크레더블>의 ‘신드롬’과 유사한 캐릭터입니다. '랏소'는 원래 데이지가 특히 아끼는 장난감이었습니다. 하루는 데이지가 밖에서 '랏소'를 가지고 놀던 중 잠이 들어버렸고, 데이지의 부모님이 미처 '랏소'를 챙기지 못한 채 집으로 오게 됩니다. '랏소'는 데이지를 계속 기다렸으나,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았고, 결국 '랏소'가 데이지를 직접 찾으러 갑니다. 산전수전 고생 끝에 데이지의 집에 돌아온 '랏소'.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은 데이지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새 장난감이었습니다. '랏소'의 빈자리를 자신과 똑같이 생긴 새 장난감이 대체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랏소'의 상심은 무척이나 컸을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랏소'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신드롬’과 ‘랏소’의 마음을 진작에 잘 살펴주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다른 픽사 영화와 마찬가지로 ‘랏소’ 역시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랏소’는 마지막 기회를 져버리고, 끝내 변하지 않습니다.
'우디'는 앤디의 장난감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다시 Sunnyside로 들어가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하는 듯 하지만 '랏소'가 이를 방해하다가 '우디'를 포함한 앤디의 장난감들과 함께 쓰레기차로 떨어집니다. Sunnyside로부터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더 큰 위기가 닥칩니다. 분리수거가 가능한 재활용 물질과 쓰레기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우디', 앤디의 장난감들, 그리고 '랏소'는 이때부터는 서로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랏소'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우디'는 그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씁니다. '랏소'는 목숨을 부지하게 되고, 또 다시 위기에 처한 '우디'와 앤디의 장난감들. 이번에는 '랏소'가 구해주어야 할 차례이지만... 그의 선택은...
-토이스토리3 中- |
픽사가 악당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소 비관적입니다.
픽사는 악당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할 기회를 주지만, 그들은 언제나 이를 져버립니다. 마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으로 대하면 언젠간 우리 아이의 마음이 열리고 바뀔 것’이라는 저의 관점과는 다소 상반되는 것 같아 픽사의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도전 정신이 생깁니다.
다음 개봉될 픽사 영화엔 어떤 악당이 등장할지, 그리고 그 악당을 어떻게 다룰지 몹시 기대됩니다. 다음 영화는 <토이스토리4>라고 하니, 더욱 더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