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라피3화] 4등 - 1등만 기억하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신호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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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14:07
※스포주의
세 번째로 살펴볼 영화는 '4등'입니다.
이 영화가 작년에 개봉했을 때 제 마음은 설렘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정지우 감독은 전작인 '해피엔드', '은교'와 같이 기존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이번에 나올 '4등'은 어떻게 다루었을까? 결코 쉬운 소재가 아닐텐데? 와 같은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스터만 보면 이 영화의 방향이 '확인사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 잡지나 영화를 소개 해주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대강의 주제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주제가 쉽지 않은 주제인데 과연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궁금함이 더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서 영화를 봤는데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결코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고민했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혼자 보기 아까운 영화이기 때문에 매년 아이들과 함께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학부모님들과도 함께 볼 예정입니다. 학교 업무상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학부모 대상으로 연 2회 이상 해야합니다. 다가 올 10월에 이 영화를 통해 학부모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이 부분 나중에 따로 후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학생들과 이 영화를 나눈 내용들을 담아보려 합니다.
저같은 경우 영화 보기 전
아이들과 항상 영화의 포스터부터 살펴봅니다.
이는 국어 시간에 글 읽기 전에 해당하는 활동과도 맥락을 같이합니다.
T : 여러분들의 부모님께서 여러분을 서점에 데려갔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가격 상관없이 가장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르면 그것을 사주겠다고 합니다. 책을 고를 때 책의 어떤 부분부터 살펴보게 될까요? Ss : 겉표지입니다.
T : 겉표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정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Ss : 제목, 작가, 출판사, 인물(배경그림)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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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 책의 겉표지에 해당하는 부분은 바로 '포스터'이기 때문입니다.
T : 제목 '4등'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Ss : 아쉬운 느낌이 듭니다. 순위권 밖을 벗어난 느낌이 듭니다.
T : 제목을 수식하는 표현을 살펴볼까요?
Ss : '반짝반짝 빛나는' 입니다.
T : 포스터에 제시된 인물은 어디에 있나요?
Ss : 수영장(물 속)에 있습니다.
T : 표정을 살펴볼까요?
Ss : 행복해 보입니다. 수영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T : 포스터 문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Ss : '난 수영이 좋은데 꼭 1등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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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기 전 이 정도로만 해도 영화에 필요한 정보를 대강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폭력에 대하여
이 영화는 15세 관람가 입니다.(보호자의 지도하에 15세 미만도 15세 관람가를 볼 수 있습니다.) 선정적인 장면은 없지만, 폭력의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폭력을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폭력은 곧 주제와도 같습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아이들이 어떤 영화보다 집중해서 보는 영화입니다. 아이들은 등장인물인 '준호'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봅니다. '준호'는 영화 속에서 초등학교 5학년 학생으로 추정됩니다. 자신과 같은 또래이기에, 또한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에 아이들은 집중해서 봅니다.
아이들과 이 영화를 나누면서 저는 질문합니다.
"사랑의 매는 과연 존재할까요?"
학년마다, 그리고 반마다 응답 비율은 달랐지만 제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수의 학생들이 사랑의 매는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니 아마도 자신을 길러주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학부시절 '학교와 교육법' 수업을 듣을 때, 체벌과 관련하여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의견들이 오갔었지만, 교수님께서는 이 한 마디로 수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저는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전합니다.
'사랑이 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의 매가 존재한다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부모님의 양육방식 또한 존중합니다.
다만, 영화 속 인물 '광수'가 '준호'에게 드는 매는 과연 사랑일까요?"
아이들은 사랑의 매와 폭력을 구분할 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폭력이 되어서는 안됨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광수'는 왜그렇게 폭력을 고집하는 것일까요?
'광수'의 선수시절을 담은 부분인 흑백으로 처리된 영상을 보시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광수' 역시 선수시절 코치로부터 소위 맞아가면서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성적이 잘 나올 땐 심지어 어떤 잘못도 용서됩니다. 하지만 성적이 안나올때는 가차없었습니다. 그렇게 공포와 두려움을 피하고자 열심히 하였고, 그 결과 성적은 잘 나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준호'는 수영이 좋아서 시작한 아이입니다. 하지만, 이내 수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바로 '광수'의 지도방식의 문제 때문입니다. '광수'는 '준호'가 수영에 재능이 있음을 확인한 이후부터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준호'의 기록을 단축하고자 애씁니다. 수영을 좋아해서 시작한 '준호'는 훈련과정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좋아하는 수영이 질릴 정도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질문합니다.
"맞아서라도 성적이 오를 수 있다면 맞겠다." vs "성적이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맞지 않고 행복하게 수영(공부)하고 싶다."
대부분 후자를 택했지만, 고학년이라 그런지 전자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도하는 학생 한사람도 빠짐없이 후자를 택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교육 현장에서 성적 향상을 핑계로 폭력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영화에서 소름돋았던 장면은 '준호'가 동생 '기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입니다. '준호'는 '광수'로 인해 폭력을 혐오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혐오하던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광수 역시 선수 시절 코치로부터 폭력행사를 당할 때에, 폭력이 싫어 태릉 선수촌을 무단 이탈하였고 심지어 기자에게까지 그 사실을 폭로했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 어느새 자신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폭력은 그 자체로도 무서운 것이지만, 폭력에 그치지 않고 대물림 된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폭력의 고리를 끊어야만 합니다.
2. 등수에 관하여
이 영화를 놓고, '준호'의 어머니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준호'의 어머니는 준호의 등수에 굉장한 집착을 보입니다. 심지어 아들을 '4등'이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는 모습도 나옵니다.
추측건데, '준호'의 어머니는 학창시절의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준호'를 통해 자신의 꿈(1등)을 대신 실현하려 합니다. 이는 왜곡된 욕망입니다. 자녀에게 자신의 꿈을 강요해선 안됩니다. 자녀의 인격은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준호'가 맞는 것이 싫어 수영을 그만 두려 할 때, '준호'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분개합니다. '준호'의 꿈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준호 엄마 자신의 꿈이 좌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준호'의 어머니는 "네가 너보다 더 열심히 했는데 무슨 자격으로 네가 수영을 그만 두느냐" 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광수'를 만나기 전 '준호'는 늘 4등만 했던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수'를 만난 이후(체벌을 받고 난 이후)에 '2등'이라는 성적을 거둠으로써 처음으로 수영을 통해 메달을 획득합니다. '광수'는 여전히 불만입니다. 왜냐하면 '광수'는 늘 1등만 해오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호'네 가족은 잔치 분위기입니다.
이 영화의 흐름은 사실 동생 '기호'의 대사로 인해 바뀝니다.
"정말 맞고 하니까 잘 한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맨날 4등했던 거야, 형?"
사실 이 영화 제목은 '4등'이지만 1등을 비판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는 누군가로부터 강요된 1등이 과연 값진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또 다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준호'는 수영을 좋아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엔 등수에 관심이 없습니다. 처음 '준호'가 1등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는 1등을 하는 형이 멋져 보여서입니다. 하지만 그 동기가 또 한 차례 바뀝니다.
폭력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 수영을 그만 둔 '준호'의 삶을 행복하지 않습니다. 다시 수영을 하고 싶어합니다. 이 때 광수를 찾아가 1등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1등을 해야 수영을 계속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이 말이 왜이리 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일까요. 사실 잘해야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쉽사리 잘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혹은 좋아하는 것을 해서 행복하다면 못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식의 말을 쉽게 뱉을 수가 없습니다. 잘할 때에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준호'는 너무나도 일찍 깨닫게 되어 한편으론 맘이 좋지 않습니다.
좋게 볼 수 있는 점은 '준호'가 1등할 동기를 자신 내부에서 찾았다는 점입니다. 코치의 폭력에 의해서도 아니고, 부모의 왜곡된 욕망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 하고 싶어서 1등을 하고자 합니다.
3. 준호의 수경 vs 광수의 수경
이 영화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장면에 있습니다.
'광수'는 더이상 '준호'를 지도할 수 없습니다. 수영대회를 앞두고 있는 '준호'에게 보일 수 있는 '광수'의 호의는 자신의 수경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광수는 그 수경을 낄 때마다 1등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운을 담아 제자에게 전해주려고 하는 의외로 따뜻한(?) 면모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경은 단순히 1등의 의미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이 담겨져 있는 수경입니다. '광수'가 1등을 일궈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폭력을 견뎌냈겠습니까.
'준호'는 '광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수영대회를 준비합니다. 수영대회 전날 '준호'는 수영물품을 챙깁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잠시 멈춤을 하고 아이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준호라면 준호의 수경과 광수의 수경 중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요?"
광수의 수경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이 나오지만 생각보다 준호 자신의 수경을 택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자신의 수경을 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이들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수경과 광수의 수경을 놓고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준호'는 자신의 수경을 택합니다.
(뒤에 있는 검정색 수경은 준호 자신의 수경, 앞에 있는 하얀색 수경은 광수의 수경)
이는 과거의 답습을 거부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경쟁에 임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방식이란? 바로 '즐거움'입니다. 준호가 수영대회를 임할 때 카메라는 준호의 물속에서의 자유로운 몸짓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치열하게 수영대회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준호'는 수영대회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준호는 1등을 일궈냅니다.
너무 뻔한 결말이라 아쉬워할 관람객도 존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준호의 1등은 짜릿했습니다. 스스로의 방식으로 경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영화에서 준호가 자신의 수경을 택하지 않는 모습이 나왔더라면 결코 이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무리
이 영화의 제목은 '4등'이지만 결코 1등을 비판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준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1등을 이루어냅니다. 이는 선생님의 폭력이 아닌, 부모님의 왜곡된 욕망의 기대에 부흥한 것이 아닌 스스로 내적인 동기에 의해 그만의 방식으로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처럼 준호가 혹 1등을 하지 않아도 저에게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가 4등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성과였을 것입니다. 사실 4등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등수입니까?
제가 이 글을 엘리트 체육을 비판하듯이 썼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에 엘리트 체육이 필요한 시점이 있었습니다. 한 명의 스포츠 스타에 의해 우리나라가 세계에 알려지고 그로 인해 국격이 높아지는 계기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2017년 현재에도 엘리트 체육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제 2의 박세리와 박찬호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폭력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선수들 스스로 내적인 동기에 의해 일궈낸 1등이었으면 합니다. 조국에 목숨을 바치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학교 체육 시간만큼은 1등을 길러내는 엘리트 체육이 아닌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고 자기 분량의 성취를 달성하는 행복한 수업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