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번외편] 12. 뭐하는 거야!
따스한 봄날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즐거운 점심시간, 거기다 따뜻한 햇살을 더하면 내가 꽤나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배도 든든하겠다, 날씨도 좋겠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선생님,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응? 그게 질문이야? 왠만한 꽃은 다 너보다 예쁘지.”
“뭐라고요?”
“라플레시아 이런 거 빼고……”
우리반 녀석들이랑 나누는 시덥잖은 농담도 즐거웠다. 그렇게 입구에 들어섰다. 계단을 걸어 3층에 다다랐을 때였다.
“피슈! 파팍!”
“으윽, 죽어라 스파이더맨!”
난데없는 마블 히어로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 옆 중앙 홀의 창문가였다. 걷는 속도를 조금 높였다. 잠시 뒤 홀에 도착한 내가 마주한 광경은 아찔했다. 우리반 장난기 에이스 민석이가 창틀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만 창문을 잡고 있었다. 나머지 한 손은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쏘는 시늉을 하느라 바빴다. 이에 맞서는 두 세 녀석은 그 아래에서 뒹굴며 반격을 하고 있었고, 이걸 지켜보는 몇몇은 깔깔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연덕스럽고 실감나는 민석이의 표정과 목소리 때문이었으리라. 얼마 뒤 녀석들은 내 기척을 느꼈고, 민석이는 황급하게 창틀에서 내려왔다. 앞서의 유쾌함과 즐거움이 현장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하는 거야!”
나의 고함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마치 나무를 쪼개는 벼락처럼 그곳을 강타했다. 쩌렁대며 복도 전체를 뒤흔드는 소리에 민석이, 옆의 친구들, 나와 같이 온 아이들까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을 다물고, 침을 꼴깍 살피며 모두들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몇 초간 말을 하지 않고 민석이를 노려 보았다. 민석이도 충분히 들을 만큼 거친 숨을 몇 차례 몰아쉬며 말이다. 공기를 짓누르는 듯한 침묵을 흘려 보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그러다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인마!”
마지막 단어에 다시 한 번 사자후를 내뿜었다. 나는 민석이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주변의 표정과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공포. 공포가 뒤덮고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나는 그 때까지 단 한 번도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 아니,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N.Q Up 프로젝트로 대변되는 평화로운 대화는 나의 철학이었고 우리 학급의 지향점이었다. 내가 권위와 힘의 독단적 사용을 싫어한다는 것을 학생들은 잘 알고 있었다. 두 달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가 그동안 보여준 모습과 정반대의 폭군으로 변하니 학생들이 놀랄만 했다. 처음에는 당황했고, 이제는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공포를 나는 충분히 읽고 있었다. 다시 톤을 바꾸었다. 누르면서 단어 하나 하나 곱씹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방금 왜 소리를 질렀는지 알아?”
“제가 잘못해서요.”
“뭘 잘못했는데?”
“창문에 매달려서요.”
“니 생각에는 그게 왜 잘못이야?”
“위험하니까요……”
한 번 더 톤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부드럽지만 단어를 단절시켜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과 두 달을 지냈으니 잘 알거야. 선생님은 너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결정하려고 노력해. 하지만 타협 못하는 게 있다. 뭔지 알아?”
“안전이요.”
“그래, 선생님은 너희와 우리반의 안전과 관련된 건 타협하지 않아. 조그만 방심이 큰 사고를 만들 수 있으니까. 방금 선생님이 목소리를 높인 건 너한테 화가 나서가 아냐. 빨리 상황을 제압하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어.”
“죄송합니다……”
“민석아, 니 몸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선생님의 소중한 제자의 몸이고 부모님의 사랑이 담긴 몸이야. 더 안전하게, 소중하게 다뤘으면 한다. 그래 줄 수 있겠니?”
“네.”
나는 민석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걸으며 둘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공적인 무대에서 사적인 무대로 넘어갔다.
“아까 많이 놀랐니?”
“네……”
“선생님도 엄청 놀랬어 인마. 으이구.”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앞의 대화가 담화였다면, 뒤의 대화는 담소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민석이의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평소에 평화로운 대화법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럼 선생님은 소리도 안 지르시겠네요?”
“거의 지르지 않아요. 소리 질러서 해결될 문제는 안 지르면 더 잘 해결되니까요. 그래도 가끔 지를 때가 있습니다.”
“언제요? 화가 나셨을 때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아니요. 필요할 때요.”
사실 대화법을 내가 제대로 실천하고, 교실에 정착시키고 나면 교사가 소리를 지를 일이 거의 없다.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두번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 폭발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큰 소리는 상대를 긴장시키고, 반발하거나 무서워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거나 폭발할 때 소리를 지르는 걸까? 바로 소리를 지르는 게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지르면 다른 방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대를 주목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상대의 뇌에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각인시킨다. 이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소통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소리를 지르는 것은 ‘혼을 낸다’는 명목 하에 전통적인 교육방법의 핵심 스킬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부작용 또한 명확하다. 소리를 지르려면 상대보다 강한 힘을 지녀야 한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효과가 일시적이다. 강한 자극 만큼 금방 휘발되고 만다. 결정적으로 상대방과의 신뢰 관계를 망친다. 나에게 소리지르는 상대를 누가 믿고 좋아하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근본적이고, 지속적이고, 평화로운 대화법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일 년에 한 두 번 소리를 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부작용을 최소화 한 채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소리 지르기'를 대화법 스킬 중 하나로 활용한다는 뜻이다.
우선 철저하게 계산해 대화를 구성해야 한다. 이성을 잃고 폭발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대로 소리를 지르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느 부분에서 소리를 지르고, 어느 부분에서 톤을 낮출 지, 템포를 어떻게 가져갈지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만 빽빽 지르다 끝날지도 모른다.
또한 두괄식으로, 짧게 포인트를 줘서 질러야 한다. 그에 대한 설명은 뒤에 차분히 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내 말의 요점을 캐치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소에 소리를 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일수도 있는데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사람만이 소리를 안전하게 지를 수 있다. 자주 소리를 지르면 상대가 ‘아, 또 저러네. 왜 화를 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평화로운 대화법을 꾸준히 실천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여야 ‘아,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실 정도면 진짜 잘못된 거구나.’라는 상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꼭 회복 과정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섬세하게, 이성적으로 했어도 소리를 지르면 데미지를 남긴다. 따라서 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잘 회복하는 후처치가 필요하다.
한 번만 쓸 수 있는 극약. 잘 다루면 좋은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