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화 : 왜, PDC?
0000년 3월 2일 드디어 아이들과 만나는 첫 날이다. 내 첫 제자들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가?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고 싶은가? 학창시절 소통하지 않고 통제와 억압으로 우리를 대하던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두발 단속에 걸려 머리를 잘릴 때의 그 수치심이란. 나는 그러지 않겠다.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교사가 될 것이다. 어린 제자들의 마음에 상처가 아닌 따뜻함을 심어야지. 0000년 3월 10일 아이들이 너무 너무 예쁘다. 나한테 “선생님!”하고 쪼로로 달려와 애교 부릴 때는 정말 꼭 껴안아 주고 싶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우리 선생님 최고!”라고 외친다. 이 맛에 교사 하나 보다. 나는 아무래도 교사가 천직인 것 같다. 0000년 3월 21일 아침활동 시간에 소란스럽다고 옆 반 선생님께 항의를 받았다. 자유로운 활동과 모습에서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오는 건데 왜 옆 반 선생님은 그걸 모르실까. 나는 아이들을 옆 반처럼 통제하고 싶지 않다. 오늘 수학 시간에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영화를 보여줄 때의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 나는, 나에게 아이들은 최고인 것 같다. 0000년 4월 3일 수업을 진행하기가 조금, 아주 조금 어렵다. 사회가 지루한 과목인 건 알겠는데 계속 아이들이 “에이~ 선생님, 그냥 우리 영화 봐요!”, “영화! 영화!” 이럴 때면 속상하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차분히 수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민준이는 “뭐야, 에이. 우~~~”하고 야유를 한다. 내가 만만한가? 0000년 4월 6일 체육 시간에 폭발했다. 지금까지 정말 백 번은 넘게 이야기했는데 아이들이 체육 시간 수업을 위해 줄을 서는 데 까지 5분이 넘게 걸렸다. 진호랑 현수는 서로 뛰면서 장난을 치기에 말렸으나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는다. 내가 웃고 친절하게 하니까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 여학생 하나가 와서 “선생님, 우리 반 너무 시끄러워서 공부하기 힘들어요. 남자애들 완전 소란스러워요. 좀 무섭게 하세요.”라고 할 때는 정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무섭게 못해서 안하는 줄 아나? 0000년 4월 7일 아침에 또 폭발해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인상을 쓰고 무섭게 하니 말을 듣는다. 자리에 앉아 아침 활동을 하는데 딴 짓을 하는 녀석이 하나도 없다. 묘한 쾌감이 들었다. 나는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는 걸 보니 역시 엄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0000년 4월 11일 며칠 무섭게 했더니 아이들이 바르게 행동한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 같다. 그러기에 잘해줄 때 잘 했어야지. 청소 검사 할 때는 교실이 윤기가 나도록 확인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반 같다. 0000년 4월 19일 출장을 다녀오고 깜짝 놀랐다. 내가 없는 사이에 아이들이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분명히 내가 떠들고 제대로 안하는 애들 나중에 혼난다고 회장에게 적어 놓으라고 했는데. 내가 없다고 나사가 풀렸나 보다. 0000년 4월 28일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내가 인상을 쓰면 하긴 하는데 떨떠름한 표정이다. 쉬는 시간에 내 주변으로 잘 오지 않는다. 무섭게 했더니 의기소침해진 건가? 이제 어느 정도 잡은 것 같으니 조금 씩 풀어줘도 될 것 같다. 0000년 5월 4일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다시 잘해줬더니 기어오른다. 내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한다. 역시 잘못할 때는 꽉 잡아야 하는 것 같다. 오늘 벌점 10점 이상인 아이들은 남겨서 명심보감을 쓰게 했다. 학원 핑계를 대려고 해서 부모님께 전화하라고 했다. 선생님에게 이기려 하다니. 0000년 5월 20일 힘들다. 내가 원한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조금만 잘해주면 나사가 풀리고 엄하게 하면 딱딱해지고. 나는 교사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
위의 일기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도대체 누구의 일기냐고?
교사는 누구나 학생들과 소통하는 친절한 교사가 되고 싶다. 초임 때 설레는 마음을 떠올려 보자.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의견을 존중하는 교사.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우리 선생님 최고!”를 외치는 모습. 어쩌면 우리가 이런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첫 발을 내딛은 후 나는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교사’
가 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요구는 거세지고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를 비난하거나 퉁명스럽고 ‘예의 없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친구 같은 교사’가 아니라 ‘친구, 혹은 하인’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오면 갈등한다. ‘뭐가 잘못 됐지?’ 그 때 툭툭 들리는 옆 반 선생님의 한 마디
“처음에 꽉 잡았어야지. 너무 풀어주면 안 돼.”
그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그러면 처음의 마음을 잊고 학창 시절 우리가 겪었던 ‘그 선생님’의 모습으로 변한다. 엄격한 통제와 조종, 규율과 질서를 앞세운다. 교실은 조용해지고 질서가 갖춰지는 듯하다. 하지만 생기는 사라진다.
‘리더십 있는 교사’가 되고 싶지만 ‘독재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차라리 어느 한 쪽만 일관되게 하는 건 나을 수 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예측 가능한 범주니까. 하지만 많은 교사들은 기분에 따라,조건에 따라 이 양쪽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면 회의에 빠진다.
‘교사, 힘들다.’
이런 교사들에게 희망을 내던지는 것, 그게 바로 PDC다. PDC는 학급긍정훈육법이라고도 하는데 캐치 프라이즈가 다음과 같다.
‘친절하면서 단호한 교사가 되는 비법’
얼마나 매력적인 문구인가? 친절하면서 단호한 모습. 그런 교사가 된다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PDC에서는 교사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단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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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함↑ 친절함↓ 지나치게 통제함 보스형 교사 |
단호함↑ 친절함↑ 책임 있는 자유 제한된 선택 |
친 절 |
단호함↓ 친절함↓ 무기력하거나 귀찮음 유령형 교사 |
단호함↓ 친절함↑ 책임 없는 자유 하인형 교사 |
1. 친절함만 있고 단호함을 가지지 못한 교사
- 별칭 : 하인형 교사
- 아이들의 욕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그걸 위해 자신의 욕구를 포기한다. 친절하지만 아이들에게 휘둘리므로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다.
2. 친절함은 없고 단호함만 가진 교사
- 별칭 : 보스형 교사
- 아이들을 권위와 힘으로 통제한다. 흔히들 말하는 ‘잡는 교사’이다. 질서가 잡혀있는 듯하며 조용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교사를 어려워하며 생기가 없다. 교사가 교실에서 사라지면 그동안 억눌린 것에 대한 큰 반동이 일어난다.
3. 친절함도 없고 단호함도 없는 교사
- 별칭 : 유령형 교사
- 존재는 있으나 존재감이 없다. 주로 보스형과 하인형을 많이 왔다 갔다 한 경력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아이들에게 학(?)을 떼고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교직을 정말 ‘직업’으로서만 생각하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관계적으로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4. 친절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가진 교사
- 별칭 : 민주적 교사
- 태도는 친절하고 원칙에는 단호한 교사이다. 따스함과 엄격함을 동시에 지닌다. 학생의 감정을 수용하고 행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원칙적이다. 학생들의 자발적인 능력을 믿으며 도와준다.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할까? 당당하게 4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민주적 교사는 흔히 이야기하는 ‘잡고 풀어주는 교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무섭게 화를 내다가 한 번 씩 잘해줘서 아이들의 마음을 잡으려는 교사는 ‘태도가 엄하고 원칙에는 너그러운’ 교사이다. 정확하게 반대다. 이런 교사는 변덕스러워 학생들이 더 마음을 주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친절함과 단호함이 공존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가능하다. 친절함은 ‘태도’의 문제이고 단호함은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에 가능하다.
도대체 그 비법이 뭐냐고? PDC^^
PDC가 뭐냐고?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