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쌤이알고싶다] *스승의 날 기념* 브라보, 나의 옆반샘!
힘이 잔뜩 들어간 인터뷰 도입글을 세문단이나 썼다 지웠습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넘치게 훌륭한 선생님 두 분을 만났습니다.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울고 웃는,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신 바로 당신처럼요.
모든 게 서툰 첫 학교에서 4년 동안 지하철로 함께 출퇴근하며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던 저의 옆 반 선배 선생님들을 소개합니다. 아침마다 선생님이라 행복하다는 홍은선, 김경희 선생님이 이번 스승의 날 기념 [그쌤이알고싶다]의 주인공입니다.
- 오랜만에 뵈니 더욱더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홍은선 선생님(이하 홍 선생님) : 안녕하세요.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초에 근무하는 홍은선입니다.
김경희 선생님(이하 김 선생님) : 안녕하세요. 저는 구리 구지초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경희입니다. (쑥스러운 웃음)
- 몇 년도에 첫 발령을 받으셨나요? 첫 발령의 기억을 듣고 싶어요.
홍 선생님: 저는 1987년에 충청남도 논산에서 첫 발령을 받았어요. 지금도 발령장을 받으러 가던 날이 생생해요. 교육지원청 학무과장님께서(지금의 교수학습지원과) 학교에서 (여)선생님은 꼭 치마를 입어야 하고, 귀걸이를 하면 안 되고 매니큐어를 칠하면 안 된다는 말씀 등을 하셨거든요.
김 선생님: 전 1992년 부산에서 첫 발령을 받았어요. 오전 오후반이 있을 때 3학년 오후반을 맡았지요. 교실이 모자라 옆에서는 교실을 짓고 있었고요. 오전에는 수업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수업을 했어요. 아이들은 50명 가까이 되고 당연히 정신없이 보냈죠.
-와 정말 상상이 잘 안 되네요. 정말 선배님들이신데, 이렇게 저랑 놀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참 어리고 경력도 모자란 나를 한결같이 존대해주시는 두 선생님께 배울 점이 참 많다.) 올해 학기 초 저희 반 텔레비전이 갑자기 고장 났어요. 글도 모르는 1학년 아이들과 교과서만 보며 맨손 수업을 하는 느낌이라 너무 힘들더라고요.
김 선생님: 미디어에 너무 일찍부터 오래 노출이 된 친구들이라 미디어가 아닌 것들에 대한 집중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집중력이나 사고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는 많이 꺼리더라고요.
홍 선생님: 미디어의 장점도 분명 많지만, 사고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큰 단점이 있지요. 대부분의 대중매체는 즉각적으로 답을 보여주거든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나 숙제가 주어지지 않아요.
-영상자료가 가지고 있는 맹점이네요. 미디어의 도입처럼 과거 학교와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더 좋아진 점은 무엇이고 아쉬운 점은 무엇일까요?
두 분 다 이구동성으로: 당연히 학교 시설이 많이 발전했고요. 준비물이나 무상급식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해주는 부분이 좋아졌지요.
안타까운 것은 교권의 추락이 몸소 느껴진다는 것이에요. 학교를 떠나 사회 자체가 더 개인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많이 들기도 해요.
-사실 저도 올해 4년 만에 담임을 맡고 가르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선생님이란 직업이 감히 제 천직이라 여기며 화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저 착각이었나 이런 생각마저 하고요.
홍 선생님: 사실 전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교사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그저 돈이 조금 드는 교대에 들어갔거든요. 그런데 25년 차가 넘어가자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이 나이에 해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해요.
전 아이들을 만나는 매일 아침이 즐거워요.누가 들으면 가식으로 생각할까 봐 말을 못 하겠어요. 힘든 아이들이 있어도 학교가 좋아요. 주말에 월요일을 기다릴 정도예요. 미쳤나 봐(웃음) 그 정도로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출근할 때 매일 한강을 지나가거든요. 지하철에서 반짝이는 한강을 보면서 아침마다 너무 행복해요. 제가 선생님이라는 정말 좋은 거예요. 아이들에게 화가 안나요. 아니 화는 몇 번 내기도 했지만(다 같이 웃음) 그래도 애들이 참 예뻐요. 돈을 안 줘도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라니까요. (문득 몇 년 전에도 홍 선생님이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났다.)
작년에 아주 힘든 아이를 맡았어요. 수업 중에 그냥 책상을 엎고 그 위에 앉아요. 갑자기 책상을 끌고 복도로 나가요. 책상 위에 올라가 복도 창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요. 저에게 “개소리!” 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럴 땐 교사로서 부화뇌동하면 안 돼요. 쉬는 시간에 따로 불러 타일렀어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기싸움 하려고 하지 않아요. 여유가 이제야 생긴 것 같아요.
김 선생님: 저는 27년 차지만 아직도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사라는 일의 특성상 매년 아이들과 학부모도 바뀌고 업무까지 바뀌니 학년 초마다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여전히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학부모와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한 해를 보내기도 했어요. 교사는 매시간 아이들과 부대끼며 상황에 맞게 순간적인 선택을 해야 하죠. 선생님으로서 올바른 감정과 태도를 보이기 위해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그래도 이런 과정 덕분에 아이들의 입장과 마음이 진심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과거에는 ‘아이들이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안 할까?’ 이런 생각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느낌이 들어요. 필요 이상의 화를 내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리저리 부딪치고 고뇌하면서 조금씩 여유가 생긴 게 아닐까요?
-와. 맞아요. 그런 게 바로 연륜과 내공이겠지요. 저도 선생님들만큼의 경력이 되어서도 아이들을 향한 사랑과 고민을 고백하고 싶어요. 그럼 지금까지 몇 명의 아이들을 만나신 걸까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나 사건이 있을까요?
홍 선생님: 1년에 30명으로만 평균으로 잡아도 천 명이 넘겠지요? 첫 제자가 마흔네 살이겠네요. 구리초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조손 가족의 아이가 기억에 남아요. 참 괜찮고 멋진 친구였거든요. 제 큰 애랑 비슷한 또래였고 동생 2명도 제가 가르쳤어요. 저도 3명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라 더욱 마음이 간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시기잖아요. 밤에 제 아이들을 재우면서도 ‘우리 반 **이는 어떻게 자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곤 했어요.
다행히 동생 졸업식에 멋지게 자란 고등학생으로 찾아와서 기뻤어요. 사진학과에 진학한다고 했는데.. 잘살고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마음이 많이 가요. 올해도 항상 일찍 오는 아이가 있어요. 매일 밥을 못 먹고 오고 항상 배고파해요. 제가 일부러 뭐 하나를 부탁하고 과자나 빵을 주곤 하지요. 그러면 그 친구는 자기 가방을 열어 보이며 “선생님 제 가방엔 이렇게 주머니가 많아요!” 하면서 좋아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주고 싶어요.
김 선생님: 저는 6학년 때 담임했던 한 친구가 기억이 나요. 오락실에서 돈을 훔치거나 도벽이 있어 방학 때 경찰에서 전화 오고 잘 나오지 않았어요. 마음을 열고 싶어 손편지도 쓰고 여러 노력을 했지만…. 제가 마음을 끝까지 열진 못했던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남네요. 그저 지금 어디에 있든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지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요. 아침에 지하철에서 뵐 때 종종 양손 가득 초코파이 같은 것을 바리바리 싸 들고 출근하시던 선생님들 모습이요.
홍 선생님: 제가 무심코 별생각 없이 아이들에게 식탁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집에 식탁이 당연히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반에 식탁이 있는 친구들이 몇 명 없었어요. 얼른 말을 거두었지요. 당연히 해외여행이나 여행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아요. 주말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주말에 키자니아를 간 사람도 있지만, 키자니아가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여전히 있어요.
김 선생님: 저는 그래서 일기 대신에 주제 글쓰기를 해요. 주제는 제가 주거나 수업 내용을 검색해서 찾기도 하고 계절이나 절기에 따라 쓰기도 합니다.
-전 발표 능력이나 래포 형성을 위해 주말 이야기를 거의 매주 하곤 했는데.. 주말 이야기가 누군가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차마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다시 한번 배웁니다. 그럼 교사로서 가장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홍 선생님: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라고 생각해요. 인성이라는 것은 말보다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먼 훗날 어떤 선생님 가르쳐주신 덧셈 뺄셈이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제가 가르친 것처럼 사는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보고 배우는 게 아니라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자라니까요.
김 선생님: 저는 결국 ‘관계’라고 생각해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 그 관계의 기본은 ‘들어주기’겠지요.
-아,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네요. 우리 후배 교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홍 선생님: 나를 힘들게 하는 한 아이에게 집착해 깊게 실망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 선생님들이 자괴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김 선생님: 때때로 스스로가 무능하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욕심내서 너무 많이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지킬 수 있는 만큼만 시작하고 여유가 생기면 추가하면 되니까요.
-지금 저를 비롯해 많은 후배 교사들에게 너무나 필요한 위로인 것 같습니다. 그럼 정말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김 선생님: 저는 잘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따뜻한 선생님, 나를 이해해준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사랑받고 아껴준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으니까요.
홍 선생님: 생각지도 않았을 때 내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주는 선생님.
무엇보다 전 제가 퇴직하는 그날까지 제 맘속 깊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많이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김 선생님: 동감동감!
나: 저도요! (우리는 마주보며 웃었다.)
선생님들을 만나며 감히 결론지었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다는 톨스토이 말처럼 멋진 선생님들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과 교육에 대한 애정과 고민, 타인을 향한 공감과 감정이입 능력, 배려와 겸손. 결국, 사랑이겠지요.
오랜만에 만나 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홍은선, 김경희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소문없이 성실하게 대한민국 교육을 지탱하는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것으로 셀프 자축 스승의 날 기념 인터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