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미술시간] 미술이 뭐예요?
학년 말 학교를 옮기느라 짐을 싸다가 <사랑의 불시착>의 조철강이 저희반 친구 손에 그리기로 재탄생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순간 빵! 터지며 혼자 막 웃다가 눈빛이 살아있는 이 귀여운 조철강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더 웃긴건 아직도 누가 그렸는지 모른다는 사실이예요.
<미술 또는 미술시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기, 만들기를 최우선으로 떠올립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온 미술수업이 죄다 그리기, 만들기 위주로 이루어져왔기 때문에 해본 게 그게 다인 이상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일테지요.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 교사의 입장에서 <미술이란?>을 생각해 봐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새 학기, 미술 첫 시간엔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름 삼각대를 그려 꾸미거나 교실 뒤 게시판을 채우기 위한 미술활동을 많이 합니다. 당면과제(환경 정리?)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미술시간에 다양한 표현활동과 가끔의 감상활동은 했지만, 그 사이사이 '미술이 무엇인가', 우리는 '미술'하면 무얼 먼저 떠올리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해본 적이 없을 거예요. 1학년 때부터 6학년까지 미술활동 시간에 교사도 학생도 이 질문을 던져 함께 고민하고 탐구해 본 기억이 없다라는 건 왠지 껄쩍지근함이 남습니다. 그래서 이 수업은 미술교과에 대한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살짝 비틀어 주는 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원격수업 초기에 저희반 지성이와 통화를 하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지성아, 너는 미술하면 뭐가 떠오르니?"
"미술이요? 미술하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그리고 만들 수 있잖아요."
"아, 지성이는 미술하면 자유로운 표현이 떠오르는구나?"
아이의 입에서 '자유로운 표현'이란 말이 나오다니 놀랐습니다.
이렇게 제 생각에 지성이 생각도 더해서 평소에 사람들이 미술하면 떠올릴만한 것을 우선 제시하고, 친구들이 놓칠만한 것(사진, 영화, 감상, 비평, 자유로운 표현, 만화, 애니메니션 등)을 이야기한 후,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물음표 속에 덧붙여 마인드맵으로 써 보게 합니다.
그런 다음, 각자의 생각 속에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은유적인 답을 해보게 합니다. 학생 개개인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 정도를 이 대목에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머뭇거릴 친구들을 위해 교사가 먼저 예시 하나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쓸 때 감을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저는 '미술은 (마법)이다.'라고 하면서 최근 바뀐 저희 학교 계단 옆 벽을 이용하여 <예쁘게 디자인 된 우리학교 벽은 나를 학교에 더 오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저희 반 친구들의 반응도 재미있습니다.
나에게 미술은 (답답한 힐링)이다. 왜냐하면 너무 잘 안그려지면 답답할 때도 있는데 그리다 보면 힐링이 되어서이다.
나에게 미술은 (자유)이다. 지금 하는 과목들을 보면 자유롭게 제 생각을 펼칠 수 없는데 미술은 나만의 느낌으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술은 (스마트폰)이다. 왜냐하면 미술도 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술은 (우주)이다. 왜냐하면 한없이 많은 것들을 펼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술은 (우유)이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술은 (쉬어가는 쉼터)이다. 왜냐하면 머리 아플 때 그림 그리거나 미술과 관련된 작품을 만들면 왠지 안정되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술은 (간식)이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다 소비되면 충전해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편견을 깨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아래와 같은 고정관념들 때문에 미술이 어렵고 재미없고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하나하나 예시 작품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고정관념 깨기 1: 미술은 그리기다
미술은 그리기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조철강 그림을 그리기의 예시로 보여주면서 제가 찍은 안목바다 비디오, 민들레 홀씨 사진, 작년 반 소정이가 만든 찰흙 장미(3D)를 보여주면서 미술은 다양한 장르의 표현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고정관념 깨기 2: 미술은 사실적인 표현이 대부분이다
미술은 똑같이 그리는 것만을 표현내용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참고 작품에도 보이듯 먹선을 이용해서 사실적으로 계곡과 시냇가를 그린 작품도 있지만, 색면으로 구성된 마크 로드코의 추상 미술 작품도 있고 나무 줄기를 책처럼 펼져 저 멀리 푸른 바다를 보여주는 상상력이 기발 난 작품도 있습니다. 또한, 우연의 효과나 순간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작품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놓치게 됩니다.
고정관념 깨기 3: 미술은 모두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다
미술관에서 한 사람이 그 이름도 유명한 <그랑자뜨 섬의 일요일 오후-쇠라(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를 이어폰을 낀 채 감상하고 있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 있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사진을 찍을 때, 색점으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작품 앞엔 이 분 외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서서 그림을 보고 있었습니다. 미술은 이렇게 모두 아름다움 것만 있을까요? 제가 찍은 로트렉 작품의 일부(파란 얼굴의 여인)나 영화 <무서운 이야기>의 포스터(와 영화)처럼 무섭고 끔찍하고 때로는 도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고정관념 깨기 4: 미술은 행복한 표현이 대부분이다
작년 저희반 소율이의 스케치북에서 얻은 그림입니다. 소율이는 서연이와 함께 있으면 하하호호 웃음이 나면서 행복한가봐요. 자유롭게 그린 그림 속에서도 이런 행복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사실, 미술작품에는 이렇게 행복하고 평화로운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화, 슬픔, 놀람, 고통과 같이 우리의 다양한 감정이 담기기도 합니다. 뭉크의 <절규>에서 보여주듯, 그리고 너무 더워 웃옷을 벗은 채 마룻바닥을 열심히 대패질하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도 담깁니다.
고정관념 깨기 5: 미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에만 있다
한 남자 아이가 미술관에서 작품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술은 이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만 있을까요?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미술이란 생각 해보셨나요? 새학기를 맞아 예쁘게 단장된 계단옆 벽과 문을 어울리는 색을 선정하여 꾸미는 것도, 갖가지 디자인을 담은 자동차도, 학교 옆 공원에 있는 안내표지판도 모두다 생활 속에서 찾아지는 미술입니다.
고정관념 깨기 6: 미술은 좋아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미술관의 문턱은 아직도 높습니다. 미술관에 가면 따분해 하는 사람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설치미술 앞에서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미술은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것일까요? 미술은 나이나 성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작년 여름, 미국 워싱턴의 한 중고서점에서 벽에 박힌 슈퍼맨 피규어를 발견했습니다. 주인 아저씨의 유머가 엿보이는 인테리어가 재미있어 사진에 담아왔습니다. 옆에 있는 고양이는 지인의 댁에 놀러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요. 고양이도 이렇게 예쁜 색 냅킨은 알아보나 봅니다. 이건 믿거나 말거나지만요. 이렇게 미술은 모두의 삶 속에서 이미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냥 지나가면 섭섭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이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이 새롭게 이해한 미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적어보게 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미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 그 동안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놓치고 있었던 미술을 발견해 보게 합니다.
이렇게 <미술이 뭐예요?>라는 주제로 <모두의 미술시간> 첫 시간이 끝났습니다. 모두들 어떠셨나요? 이제 미술 좀 더 알아보고 싶으신가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세요.
참고자료
PPT 동영상 자료: https://youtu.be/bpQk5xGzUnI (동영상을 이용하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세요.)
PDF 자료 (자료를 이용하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녹음하세요.)
(단, 본 자료의 내용에 대한 저작권은 손선생에게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