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학부모의 공포심
내 아이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찾아들면서, 이것이 계속 이어질 경우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그런 깨달음이 찾아 들었습니다. 부모라서 당연히 이런 마음이 드는구나. 이제 중학교 1학년 생활을 갓 시작했는데, 벌써 부모는 아이를 고등학교 3학년 지나서 그 이후의 삶까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구나. 부질없이.
아이를 앞에 두고는 늘 부질없는 걱정과 근심이 마음 속을 어지럽히곤 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첫째 아이가 첫 돌 갓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뮤지컬 표가 생겼는데,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어서 부모님 댁에 맡기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뮤지컬 보는 내내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결국 뭘 보았는지 정신만 아이 편으로 보내다가 후다닥 돌아왔던 기억이 납니다. 제 어머니도 삼남매를 키워낸 육아 베테랑인데, 왜 그리 아이를 맡겨둔 것이 신경이 쓰이는지...
저는 까닭없는 공포심이 부모를 늘상 휘두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커 나가면서 부모의 시선은 아이의 살아갈 날을 향하게 됩니다. 훌쩍 커버린 아이에 대해서, 혹여 넘어질까, 혹은 아무거나 입에 넣지 않을까, 혹시 어디에 긁히기라도 할까, 같은 아이의 현재 모습에 대한 걱정 대신, 이제 아이의 미래를 우려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부모는 이런저런 준비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주로 아이의 학교 생활의 성취도 쪽으로 향합니다.
아이들의 학교 성취도가 아이들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까닭은, 아이의 책임감과 성실함이 향하는 지점이, 아이들이 가장 오랜 시간을 지내는 학교 생활이며, 학교 생활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성취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부모도, 교사도, 학생들도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곳에서 발생합니다. 성취도가 점수로 치환되는 현상 말입니다.
점수가, 그리고 등수가 아이들의 성취도에 대한 지표가 될 수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같은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일회적인 평가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의 평가는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을 수치화하는 방식이 전통적으로 선호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수행평가 국면에서의 수행평가지부터, 고등학교의 최종 보스 격인 대학수학능력평가까지. 일회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수치화하여 학생의 성취도로 측정하는 것. 이는 학생의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성취의 과정을 중시하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시험 점수가 일련의 성장을 드러내지 않느냐라고 반문하실수도 있지만, 일회적 평가가 과정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점수는 과정과 과정을 분절하는 지점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이를 연속적인 성장의 과정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 심지어는 교사들까지 아이들의 성취도를 별 고민없이 성적으로 치환하여 판단하고, 이 지점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과정에서의 성장에 대한 고민보다는 결과 지향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것이 사교육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학부모도, 학생도, 심지어는 교사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결과 중심의 일회적 평가에 집중하게 되고, 그 때 나오는 수치를 가지고 학생의 성취도를 가늠하면서 고민을 더 깊게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끝모를, 까닭없는 공포심에 빠지게 됩니다. '쟤가 저렇게 점수를 받아와도 되나?'
아이가 받은 현재의 점수는, 지금의 분절적이며 일회적인 결과 중심의 평가 시스템 아래에서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의 성취도를 총체적으로 드러낼 수 없습니다.
점수가 아이들의 성취도로 치환되는 현재의 상황을 바꾸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장 과정이 드러날 수 있는 평가 도구를 개발하여 운영해야 하고, 학부모는 자녀의 일련의 성장 과정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아이에 대한 신뢰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하며, 학생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자기주도적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책임감과 성실함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학교는 과정의 마무리로 평가를 운영함으로써 성취도가 점수로 치환되는 것을 방기하고 있으며,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스스로 성장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채 과도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자녀가 원하지 않는 것을 미래에의 준비라는 명목 하에 자녀의 동의 없이 강요하고 있고, 학생은 그 와중에서 스스로 달려갈 동기와 동력을 잃은 채 즐겁게 보내야 할 쉬는 시간·점심 시간을 학원 숙제로 소진하고 오히려 수업 시간에는 휴식을 취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으로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이 파고 들어오는 지점은 바로 자신의 자녀를 도무지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학부모의 공포심을 힘입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사교육은 학부모의 공포심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