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들2] #1. 3월, 익숙한 낯섦
새 학년, 3월. 익숙한 일들과 반복되는 일정이지만 언제나 낯설기만 한 시작.
초반의 실수는 마음을 더 조급하게 만들고
완벽하려 할수록 작은 실수가 커다랗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나만 그럴까?
새 학년이 시작되면, 올해는 잘해보자는 다짐, 왠지 잘 될 것 같은 기대감, 작년에 머리를 싸맸던 일들이 반복될 것 같은 두려움이 교차한다. 충전을 위해 잠시 일상을 떠나 있다 오기도 하고, 책도 한두 권 구입해 펼쳐 보았으며, 몇 가지 아이템도 구매하고, 이름표, 사물함이름표, 파일이름표, 첫 소개자료, 자기소개 활동지, 수업일지, 상담 종이 등등도 업데이트, 컬러복사, 코팅을 해 두었다. 다 한 줄 알았는데 늘 빼먹은 게 있네헐 작년 학반 안 고쳤구나 구 동학년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고. 같은 학교인데 1년 간 한 번 연락하기도 어려우니 참. 전근하면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새로 맡을 학년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가 들려 오지만 그것은 그분들의 시선 역시 내가 직접 맞아 겪어 보는 것이 최선이다.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교사들이 맞이할 3월의 떨림, 교사라면 퇴직 전까지 언제나 맞이할 3월의 분주함. 분명히 작년에도 이 시기를 지냈는데, 어째서 내 머릿속까지 리셋되는지. USB 어디갔니겨우 찾았더니 내가 이런 걸 했었나 작년에도 청소하다 엄청 힘들었는데나는 왜 올해도 짐더미를 이리 생성해 놓았나 버리지를 못하고 또 싸들고 왔고나
첫날 :: 소개, 첫 글쓰기, 첫 그림, 첫 활동, 사진찍기, 통신문 9장 나누어 주기.
첫 주 :: 이름 외우기, 학급 세우기, 통신문 수합해서 통계 내기. 첫인상 돌아보기. 잘 챙겨 오는 아이 며칠째 안 가져오는 아이 앞으로 나와 말하는 아이 선생님 설명과 동시에 말하는 아이 선생님에게 관심 보이는 아이 친구 말 전해주는 아이 여러 번 묻는 아이 돌아다니는 아이 선생님이 다음 할 일 챙겨주는 아이 말하지 않는 아이
둘째 주 :: 학습규칙 안내 및 학습 진단
셋째, 넷째 주 :: 학부모 총회와 공개수업, 이어지는 학부모 상담.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은 또 오고. 욕심껏 너무 바쁘고 숨찬 3월. 코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가 버리고 한 주는 무척 느리게 가는 마법.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고, 실수가 다시 발생하면 통제감이나 자존감이 뚝뚝 떨어진다.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 년 내내 힘들 것만 같은 생각.
하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새 아이들, 새 동료들, 새 업무에 적응하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내가 이번에도 너무 급했구나.
물론 하루를 돌아보고 실패감에 젖을 여유도 없기는 하다. 오늘도 화장실 못 갔네 입술도 지워졌었구나
나는 왜 매 해 이럴까. 다른 사람들은 척척 해 낼텐데. 학부모들은 아마 나를 전 교사와 비교할텐데. 몸은 지쳤는데 마음만 바쁘고 자괴감에 빠지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그런데 과연 종종거리며 교실, 학교를 오가는 것은 과연 나 혼자뿐일까?
사실 교사라면 누구든 홀로,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연임, 중임을 해도 작년의 그 아이는 아님을 장담합니다
학급 운영의 책임감은 누구나 묵직하게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 적은 교사라면 막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한편 경륜이 쌓일수록 다양한 문제 상황을 떠올려 오히려 겁이 날지도 모른다. 또 긴장감을 나눌 이들을 찾는 데 더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퇴임하기 전까지는 매년 3월은 바쁘겠구나 매년 7월 매년 12월 매년 똑같아아아
토니 험프리스는 교직 내부에 존재하는 스트레스 유발 원인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동료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선생님들의 관계는 교직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임을 밝히고 있다. "자부심이 낮은 선생님은 극도로 열심히 일하고 자신에게 그리고 매우 빈번하게는 학생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면서도 동료 선생님에게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는 수동적이고 조용한 선생님”이거나 “고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통해 내면의 갈등을 드러내기도 하고, 교사 회의에서 비협조적인 행동을 보이거나 자기 방식대로” 행동하기도 한다고 한다.
두 유형 모두 ‘전문적 성과와 개인의 정체성을 연결하여 생각하고, 변화를 위한 제안이나 피드백을 위협으로 생각하는’ 방어적인 의사소통을 보이며 동료 선생님에 도움을 청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이 심화된다. 험프리스는 선생님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필요와 관심을 표현하고 내면의 갈등 해소를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긍정적이고 유익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들이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료들과의 원만하고 성숙한 소통을 위해 ‘필요를 표현하는’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강조한다.(<선생님의 심리학>, pp76-78.)
실수할 수 있어요, 누구든.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은 걸요. 지나간 일은 패스합시다. 내일 다시 잘하면 되죠. 들려 주세요, 당신의 속사정은 무엇인가요.
이런 말을 서로 건네는 우리가 된다면 어떨까.
복도를 지날 때 유리창 너머로 다른 반의 흔적들이 보일 때, 선생님들의 노하우가, 아이들을 맞이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오늘 참 애쓰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누구에게나, 3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