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치킨과 1,000원
치킨과 1,000원
올해 4학년 아이들과 함깨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발표 하고 싶어서 안달난 친구들이 많은 반에서, 뛰는 것이 너무 좋은 아이들과 삼주를 보냈습니다. 긴장하고 힘들 새 학기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고 일주일간 서로를 많이 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새 교실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즐겁고 안전한 학교 생활을 위한 서로의 약속까지 정했습니다.
올해 아이들과 정해본 학급 규칙
그리고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있었던 이야기를 오늘 해볼까 합니다.
지난 주 수요일, 3월 14일 중학교 학부모 총회를 작년 제자들이었던 중학생들이 4교시를 마치고 저희 반에 찾아왔습니다. 졸업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학교 책걸상이 작다며 신기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습니다.(누구랑 누구가 서로 사귀고 누구는 헤어졌고 누구는 어떤 사고를 쳤고 등등 이제 저에게는 큰 관심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죠.)
예전 담임선생님께 찾아오는 거라고 비타** 한 박스와 사탕 몇 개를 가지고 온 학생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기도 싫고 이야기도 좀 더 할겸해서 치킨을 시켜줬습니다.
치킨은 언제나 옳습니다.
잠시 후 배달 온 치킨을 뜯으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던 중 방과 후를 마치고 인사를 온(올해 우리반 학생들은 방과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나고 난 후 선생님이 뭐하시나 보러오는게 일입니다.) 한 친구가 우리 반의 시커먼 교복 누나 형들을 보고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누구세요...?”
아이들 속에 있던 제가 고개를 들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작년 제자들이야.”
옆에 있던 한 학생이
“너 치킨 하나 먹을래?” 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말하는 아이에게 제가 “괜찮아 집에 가는 길도 멀 텐데 이거 하나 가지고 가.”
괜찮은데 하면서도 아이는 가까이 와서 건네주는 치킨을 잡고 꾸벅 인사하고 갔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중학생이
“선생님, 어떤 애가 치킨 한 손에 들고 ‘히히히’ 하면서 뛰어갔어요.”하는 이야기에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학생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천원 한 장을 쑥 내밀었습니다.
잘 접혀있던 천원 한장(이 이미지는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게 뭐야?”
“이거 받으세요.” 합니다.
나는 돈 걷을 일이 없는데 뭐지 싶어 잠시 멍해졌다가 치킨 값이라고 준건가 싶어서
“안 줘도 되.” 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얘, 그거 선생님 주면 선생님 큰일나.”합니다.
저도 덩달아 “선생님 잡혀 가~선생님 한테 돈을 주면 어떻게.”하며 웃으니 아이가 돈을 주섬주섬 집어 넣었습니다. 부모님이 남이 준 것을 공으로 받지 않도록 가르치신 건지, 제가 없는 돈으로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었다고 생각했는진 모르지만 그동안 생각했던 아이의 이미지랑 달라서 우습기도 하고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평소 누나랑 집에 가는 것을 알기에 다시 돌아가는 아이 손에 치킨 하나를 또 쥐어주고 보냈습니다.
올 한해 이런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 지난주 목요일에 목상태가 상당히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수업준비에다가 바쁘게 돌아가는 업무 처리를 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었나 봅니다. 그 상태에서 하루 종일 정돈이 안 되는 반 아이들에게 화도 많이 내고 예민하게 반응을 했었습니다.
그 날 방과 후를 다녀와 또 인사를 하는 그 친구가 문 앞에서 “선생님 잠시 쉬었다 일하세요.”라고 말하고 갔습니다. 학생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그 한마디에 몸에 있던 긴장이 촥 풀리면서 ‘오늘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행동을 한건가’ 싶더라구요. 그 친구 덕분에 한번 웃고 잠시 차 한잔 하고 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아이에게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