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Q, 지금부터 Q 4탄] 9. 전화는 거들 뿐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냐? 나 14개나 들어왔어!”
“헉, 정말이요? 엄청 많으시네요.”
“담임이 잘생겨서 그런 거 아냐?”
“아니에요. 미치겠네 진짜. 아고…... “
상담 주간 학년 협의실, 화두는 학부모 상담 신청의 개수이다. 상담 신청이 많은 교사는 인상이 좋지 않다. 상대적으로 적은 동료는 미소를 띈다. 그 때 한 동료가 말한다.
“나도 10개야.”
“우와, 이선생님도 많으시네요. 힘드시겠어요.”
“괜찮아.”
“네? 왜요?”
이교사는 웃음을 띄며 대답한다.
“7개가 전화상담이거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 교사 30명에게 전화 상담과 대면 상담 중 어떤 게 더 좋은지 물었다. 결과는 압도적이었다. 83%(25명)가 전화 상담을 택했다. 표본 집단을 늘려도 결과는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도대체 왜 교사들은 전화 상담을 선호할까?
1. 전화 상담의 매력
교사들이 전화 상담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적게 걸리기 때문이다. 대면 상담은 말이 길어지고 상황의 변수가 많다. 얼굴을 보다보니 무언가 말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잇는다. 또한 교실과 상대의 모습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있다. 그래서 대면 상담이 더 오래 걸린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평균을 내보면 대면 상담과 전화 상담 사이에는 약 25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난다. 학부모와 더 오래 상담하고 싶은 교사가 얼마나 될까? 그래서 전화를 선호한다.
두번 째는 부담이 적다는 이유다. 대면 상담은 아무래도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준비할 게 많다. 교실 정리정돈도 신경 써야하고 복장도 더 섬세하게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다. 그러다 보니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도 할 수 있는 전화 상담이 더 매력적이다.
2. 숨겨진 진실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 화려해 보이는 이유는 그림자가 짙기 때문이다. 전화 상담의 매력에도 숨겨진 진실이 있다.
우선 시간이 적게 걸리는 이유가 뭘까? 대화할 거리, 즉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화 상담은 전적으로 언어 메시지에 의존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차례 글을 통해 비언어적 메시지가 언어적 메시지에 비해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참고 : https://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52
신성욱 작가에 의하면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의 시계로 표현해봤을 때 구술 언어가 등장한 것은 저녁 7시 30분 쯤이다. 그리고 문자 언어가 등장한 것은 밤 11시 59분 59초 쯤이라고 한다. 자정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오롯이 제스쳐와 표정에만 의존한 소통 경험은 인류를 그에 적합하게 진화시켰다. 그래서 우리의 유전자는 상대의 말보다는 몸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화 상담은 이 몸신호를 사용할 수 없다. 손발을 묶은 채 술래잡기를 하는 것과 같다.
시간이 적게 걸리는 또 다른 이유는 전화는 좇기기 때문이다. 대화에는 쉼표가 있다. 양측이 숨을 고르고 말을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이런 쉼표 없는 대화는 정보 과부하와 부담을 부른다. 그런데 이 쉼표는 필요하지만 어색하다. 대면 상담은 그래도 괜찮다. 다양한 시각 정보와 신호, 단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눈웃음이나 고개 끄덕임으로도 쉼표를 매울 수 있다. 하지만 전화 상담은 불가능하다. 유선 상에는 침묵과 침 삼키는 소리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색함은 극대화 되고 ‘끊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신호가 된다. 이 침묵에 쫓겨 상담은 끝나고 만다.
부담감이 적은 이유는 준비가 수월하고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은 장점만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가 깊어지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대화는 종합예술이다. 단순히 말의 왕복이 아니라 온갖 신호가 오고 간다. 상호자극하는 뉴런의 복잡한 신호체계에 견줄만하다. 이런 의사소통은 오랜 시간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다. 우리의 유전자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생존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를 이용하거나 본심을 드러내지 않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암호화를 해제하고 본심을 드러내게 되는 계기는 간단하다. 상대를 신뢰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전화 통화는 제한된 정보로 인해 이 수준의 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물론 모든 학부모와 깊은 대화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서 본심을 끌어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 전화 상담을 추천합니다.
전화 상담은 장점도 많은 방법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는 전화 상담을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첫째, 가볍고 형식적인 상담을 원할 때이다. 학부모 상담 주간이라 학부모도 으레 ‘신청해야 하나 보다.’라는 마음으로 신청했을 경우, 그런데 딱히 문제 상황이 없을 경우에 적절하다. 혹은 위험 부담이 적은데 교사가 피곤하거나 사정 상 시간이 넉넉하지 않을 경우에도 시도할만 한다. 물론 대면 상담을 원하는 학부모를 전화 상담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건 교사의 역량(?)이다.
둘째, 아이를 칭찬하는 상담일 경우다. 요즘은 학부모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자 학부모에게 아이 칭찬을 하는 교사가 늘고 있다. 긍정적인 내용은 굳이 총체적인 신호와 에너지까지 사용하지 않아도 효과적이다. 문자로만 받아도 기분 좋은 게 자녀 칭찬이기 때문이다.
셋째, 본인이 생각하기에 상담의 초고수이면 추천한다. 전화만으로도 오해 없이 상대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수준, 실수가 없으며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전화 상담으로도 충분하다.
위의 경우가 아니라면 전화 상담의 역할은 명확하다. 상대의 감정을 읽어 어느정도 급한 불을 끄고 대면 상담으로 상대를 초대하는 것, 그것까지이다.
4.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화 상담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다. 전화 상담 역시 효율적인 수단이다. 다만 교사들은 전화 상담의 순기능보다는 편의를 위해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이면에 숨겨진 부작용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전화 상담을 비교적 많이 활용한다. 물론 언급한 부작용을 최대한 줄여서 말이다. 그 꿀팁은 바로
3월에 모든 학부모들과 대면 상담하기
이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모든 학부모와 학년 초에 대면 상담을 한다. 당연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에너지가 많이 든다. 동료 교사들은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한다. 하지만 효과가 좋아서 매년 하고 있다.
학년 초에는 비교적 갈등이나 문제 상황이 적다. 서로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다. 그래서 비교적 시간을 덜 들이고 대면 상담을 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대화의 내용 보다도 상담의 경험과 그 시간 동안 습득한 나와 교실에 대한 정보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이건 전화 상담의 큰 약점인 정보의 한계성을 보완해준다. 학부모는 교사와 전화 통화를 하지만 교사의 말투, 목소리, 교실의 장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메시지 등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다. 거기다 수시로 많은 정보를 노출한다면 더 효과적이다. 전화 상담은 그 때 꽃을 피울 수 있다.
참고 : https://educolla.kr/bbs/board.php?bo_table=Author_DoDaeyeong&wr_id=90
시간이 많이 들어 힘들지만 일 년 동안 드는 총체적인 시간과 에너지의 양을 생각하면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참고로 2학기 상담 주간에 우리 반은 전화 상담 3명, 대면 상담 2명만 신청했을 뿐이다.